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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본 영화읽기

<마타도어> 잔인한 세상

<마타도어> 2005, 미국/독일/아일랜드
감독: 리차드 쉐파드
주연: 피어스 브로스난, 그렉 키니어 

 

퇴락한 킬러인 줄리앙(피어스 브로스난) 암살임무를 띠고 멕시코로 간다. 그는 평소 늘 외로운 데다가 마침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인 걸 알고 급우울해 한다. 그 와중에 사업계약 건으로 멕시코에 온 대니(그렉 키니어)를 바에서 만나 친해진다. 줄리앙은 대니에게 자신의 암살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6개월 후 줄리앙은 신경쇠약으로 인한 암살 실패로 도리어 암살위기에 처하고 또 다시 대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대니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자신의 절대절명의 계약건을 성사시켜줬던 줄리앙의 마지막 부탁을 결국 거절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얄팍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무정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그 허전함을억지로 자신의 삶에 존엄성을 부여하려는 대의명분적으로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투우를 빗대 그리고 있다

 

두 주인공은 벼랑 끝에 서있다피로에 지친 줄리앙은 암살임무에서의 실수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대니는 멕시코에서의 사업계약을 하지 못하면 자신의 가정을 계속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인지 회의적이다. 줄리앙에겐 집이 없고 집과 아내가 있는 대니는 "내가 아내에게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줄리앙에게 고백한다

이 위험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그나마 우정이란 것이 필요할텐데 우정이 도리어 대니의 가정을 위협한다.대니의 집은 폭풍우로 넘어진 나무가 박살을 내고 줄리앙은 대니의 아내를 은근히 유혹한다. 이 얄팍한 우정의 본질은 영화의 후반부 반전부분에서 드러난다.

작가 장정일은 자신의 <독서일기>에서 촉나라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한 건 유비, 관우, 장비의 양아치적 우정의 기반이 너무 허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라고 했다. 주인공 두 사람의 우정도 곰곰히 따져보면 너무나 얄팍하다. 하지만 그런 얄팍함을 직시하자면 스스로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에 줄리앙은 투우에서도 고귀함, 존경이 있다고 자위적으로 우긴다.

이 영화는 이런 슬픈 인생이야기를 블랙유머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도 매우 세련되며 그냥 생각없이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다별로 유명하지 않은 헐리우드 영화들 중에 이런 좋은 영화들이 꽤 많다.


(by 이기본. 2015.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