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쥐는 이중성을 상징한다. 배트맨은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인간의 이중성은 너무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누구나 쉽게 인정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냥 하나마나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이중성을 거론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런 영화의 의미를 굳이 찾자면 어떤 절대권위에 도전하는 마인드를 키우는 데 있다.
배트맨, 수퍼맨, 스파이더맨 등의 초인들의 이야기를 즐길 때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는 독자는 없다. 그런게 어떤 절대적인 권위다. 주인공이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딜레마에 빠지기는 해도 그건 극복해야 할 난관일 뿐이지 초인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배트맨>은 다르다.
배트맨은 부모를 죽인 조커에 대한 복수심, 원한을 일반적인 정의감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게, 정신분석학에서 지나친 정의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를 이야기할 때 어릴 적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좀 불경스런 발언일 수 있지만 안중근 의사나 이순신 장군같은 경우도 정신분석학적으로 따지면 어릴 때 어떤 결정적인 상처가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럼 이게 뭐가 문제냐. 악당 조커가 보기엔 배트맨이 '재수 없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악당 조커는 어떤 물질적 이득보다 배트맨이 재수 없어서 배트맨을 괴롭히려고 일을 꾸민다. 심지어 자신의 돈을 뿌려가면서까지..
그리고 배트맨의 반영웅적인 모습은 평범한 악당 조커와 싸우다 조커가 난간에서 떨어지려할 때 조커의 손을 잡아주다가 손을 슬쩍 놓아버리는데서 잘 나타난다. 이건 누가 봐도 영웅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구해주려면 구해주고 죽이려면 죽이지 왜 구해주는 척 하면서 죽이느냐 말이다. 그래서 배트맨 때문에 오히려 수퍼 악당으로 거듭난 조커가 배트맨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창조했다"
즉 동기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결과는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선한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그런 거 완전히 일치시키고 살 순 없지만 그런 문제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것. 영화 <배트맨>은 인간의 이중성, 또는 위선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
위는 다 쓸데없는 소리고 영화 <배트맨>은 매우 재미있다. 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고담시 시청 앞에서 배트맨이 조커와 대결할 때 배트플레인이 하늘로 치솟아 달을 배경으로 잠시 멈추었다 다시 내려갈 때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배트플레인이 기관소총까지 쏘며 총 하나로 반격하는 조커를 향해 돌진하는데 조커가 총 한 방으로 배트플레인을 격추시켰을 때 박수까지 쳤다.
영화 구석구석에 포스트모던한 요소들, 유머가 있는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 배트맨!
이 영화 개봉당시 만화 <배트맨>의 열혈 팬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클 키튼의 캐스팅에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영웅 배트맨을 소화하기엔 작은 체구와 뭔가 음험한 얼굴 때문에..
하지만 그건 무식한 관객들의 생각이고 감독의 의도에 110% 부합하는 마이클 키튼같은 훌륭한 배우가 출연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가 되었다. (201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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