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기본 영화읽기

<도그파이트> 소박한 반전영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Dog fight, 1991)
감독 : 낸시 사보카
주연 : 리버 피닉스, 릴리 테일러

 

할수록 최악의 결과를 낳는 싸움, 즉 개싸움, '전쟁'의 특징은 너무나 어리석다는 것이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전쟁의 어리석음은 막상 전쟁 당사자들은 깨닫기가 어렵다. 그들에게 전쟁은 진지하고 숭고한 어떤 것일 수도 있고 또는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 중의 하나다. 그게 문제다.

 

역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애디를 비롯한 해병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자기들만의 규율을 큰 소리로 외쳐댄다개들이 주변을 아랑곳 않고 짖어대는 것과 같다. 군복을 입으면 개가 된다는 말은 진리다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무료함에 지쳤던 젊은이들의 선동으로 이뤄졌고, 1차대전 당시 징병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설레임에 젖어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파병전야에 이 해병들의 전통적으로 하는 놀이는 가장 못 생긴 여자를 파트너로 데려오는 이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로즈를 데려 온 애디가 '우승'한다. 이것은 최악을 추구하는 개싸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놀이다. 로즈는 애디가 자신을 데리고 온 이유를 알고 상심하고 애디는 기초적인 죄책감으로 하룻밤 로즈와 데이트를 한다. 개싸움의 매카니즘은 생각 외로 강고해서 균열을 내기가 쉽지 않다언제나 균열은 작은 데서 온다. 애디의 작은 죄책감이 개싸움에 균열을 가져온다애디 패거리 네명이 전우애로 팔에 벌 문신을 할 때 애디는 로즈와 다니느라 문신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신 안 한 애디만 전쟁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디를 <7 4일생>의 톰 크루즈처럼 반전투사로 변모시키지는 않는다.  애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개싸움에 균열을 일으켰지만 하룻밤을 같이 보낸 로즈의 쪽지를 찢어버리고, 또 전쟁이 끝나서도 패거리 4명의 벌문신을 자기 팔에 모두 새긴다. 그리고 선술집에서 노인들에게 자기가 전쟁에 참가했다는 자부심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애디가 로즈를 찾아가 포옹하게 함으로써 '작은 균열'을 소박하게 완성한다

로즈가 애디와 돌아다니며 피상적으로 잠시 언급하는 것 외엔 이 영화에서 직접적인 반전메시지를 찾긴 힘들다. 그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는 애디와 로즈의 하룻밤 데이트를 따라다니며 그들을 담담히 지켜보기만 할 뿐인데 그게 큰 울림을 준다웅변으로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지만 조용한 미소로도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애디 역의 리버 피닉스는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연기를 보여준다. 상대 여배우와 함께 식사하고 
걷고 대화를 하고 짧은 하룻밤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불안한 눈빛과 무표정한 표정으로 파병전야의 불안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리버 피닉스의 연기는 전쟁을 앞 둔 특정한 상황만을 연기한 것이라기보단 전쟁 시스템의 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불안한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 로즈가 애디와 하룻밤을 보낼 때 침대 맡에 있는 전축에서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right'을 튼다.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던가.




(by 이기본. 201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