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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본 영화읽기

<알리> 나는 복싱보다 위대하다


<알리> 미국, 2002

감독: 마이클 만

출연: 윌 스미스, 마리오 반 피블스, 제이미 폭스

 

이 영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감동을 조작하는데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매우 건조하게 찍었기 때문이다사실 알리의 생애를 드라마에 집중해서 찍으면 그냥 감동이다. 그런데 감독은 나름대로 그런 뻔한 길을 피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조지 포먼과의 재기전 장면이다너무나 리얼한 권투시합의 재현. 윌 스미스, 대단하다. 실제 알리의 시합장면과 거의 흡사하다.

 

알리와 조지 포먼의 이 경기는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알리의 철저한 아웃복싱, 전성기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그런 민첩함은 없다하지만 알리의 고단한 인생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런 시합이 알리의 인생과 맞물려 색다른 감동을 준다. 실제로 마지막에 알리가 포먼을 다운 시켰을 때 가슴이 찡 하더라. 조지 포먼의 복부공격을 끈질기게 버티다 포먼이 지친 틈을 타서 8 라운드에서 연타를 성공시키고 결국 다운을 뺏는 알리. 지지부진한, 어떻게 보면 겨우겨우 이긴 시합이 마지막 시합 장면은 알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노벨상 후보에도 오른 바 있는 노먼 메일러라는 미국 작가는 이라크전에 대해 “이라크전은 미국 백인남성들의 자존심을 돋궈줄 그 무엇이다”라는 특이한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윌 스미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배우 중 하나다.) 메일러는 또 부시 대통령을 가리켜 “난 ‘악’이란 단어를 10분간 18번 사용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알리의 전기를 쓰기도 한 메일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재는 채플린과 알리”란 말을 했다. 메일러 뿐 아니라 타임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20인에 알리를 포함시켰고 CNN은 알리를 20세기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켄터키고향으로 금의환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는 고향의 어느 레스트랑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입장거부를 당하고 삐뚤어진다. 알리는 식당에서 쫒겨난 뒤 금메달을 주저 없이 강물에 던져버리고 프로로 전향해서 1964년 헤비급 챔피언이 된다. 이후 말콤X와 만남을 계기로 백인들이 준 이름이란 이유로 캐셔스 클래이란 본명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알리란 이름을 얻는다.

 

1967년 알리는 “난 베트콩에게 적대감이 없다”란 말과 함께 참전을 거부하여 법원으로부터 5년 간 출전금지 처분을 받는다. 이때부터 알리는 시합을 못하고 취직이 안되서 생계까지 위협받고 반역자로 낙인찍혀 주변의 테러까지 걱정해야 하는 기나긴 고난의 길을 걷는다자신의 가장 전성기를 자신의 신념과 고집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알리는 지난한 법정투쟁으로 3년 반 만에 기어이 무죄판결을 받아내고 1971년 다시 복귀하지만 조 프레이저에게 진다. 하지만 1974년 조 프레이저를 꺽은 신예 조지 포먼(당시 팔팔한 24)을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오른다이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바로 이 경기가 영화 <알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다. 이후 알리는 레온 스핑크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으나 곧 이은 리턴매치에서 다시 타이틀을 되찾아와 3차례 헤비급 챔피언 등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현역 챔피언으로 지낸 알리는 명실상부한 영원한 챔프다.

 

알리는 자신의 펀치에 다운 된 상대선수에게 “늙은 곰아 빨리 일어나” 따위의 모욕적인 말을 퍼부어대고 (물론 쇼맨쉽이다), 시합 전 인터뷰 말미에 챔피언이 되라는 덕담을 하는 기자들에게“난 당신 백인들을 위한 챔피언 벨트는 따지 않는다. 오직 나를 위한 챔피언 벨트를 딸 것이다”라는 삐딱한 멘트를 굳이 날리고야만다.

 

시간나면 시합 중 계속 떠드는 알리의 경기모습을 한 번 구해 보시라. 시합 중의 수다 때문에 체력이 저하될까 걱정될 정도다. 지금 돌이켜보면 알리의 수다는 수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미국사회에서 외로운 돗단배였던 알리는 달리 기 죽지 않고 싸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알리는 ‘복싱’보다 위대하다”라는 말은알리 자신이 한 말이다.


(by 이기본. 201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