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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본 칼럼

EU의 의미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당시 학생이었던 헤겔은 이 세상에서 '자유'가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그후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고 예나에 입성했을 때 당시 <정신현상학>을 완성할 무렵의 예나대학 철학교수였던 헤겔은 말을 탄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세계정신'을 보았다. 


헤겔과 베토벤이 자기 나라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을 찬양했던 것은 그들이 '매국노'라서가 아니다. 처칠도 영국 역사는 로마 카이사르가 만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할 정도로 유럽은 독자적인 국가 역사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유럽은 고대 이래로 왕족, 귀족, 평민, 노예에 이르기까지 서로 섞여왔다. 국가 개념을 우리가 생각하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럽연합의 꿈은 로마제국 이래 2000년 넘게 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장구한 역사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이성의 힘으로 실제로 꿈을 이루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일찌기 국가를 만들었지만 국가와 개인이 '계약'을 맺는다는 경험과 인식은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개인주의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고 경험도 없다는 것. 국가의 개념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생겼다고 인식하고 또 실지로 그렇게 만들어가려고 했던 유럽 역사를 이해한다면 유럽연합은 '국가'의 확대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유럽연합을 만들 때도 유럽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토론하고 협의하고 합의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역사에서의 절대정신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빅토르 위고는 유럽은 한가족이고 유럽연합을 만들어야 하고 통화도 통일해야 한다고 이미 200년 전에 주장했다. 물론 현대에 유럽연합이 성립됐던 가장 강력한 동인은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었다. 전쟁만 없어도 세상은 살만하고 전쟁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다.유럽연합 각 국가들은 행정체계, 화폐체계, 사회적 노동기준을 합의하고 실천하고 있다. 대단하다.

그 이전의 역사적 배경도 있겠지만 양차대전의 그 엄청난 희생의 열매가 유럽연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야말로 공짜가 없다. 경제사회적, 개인적 경험이 축적되어야 사회의식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다. 일각에서 유럽통합의 의미를 그저 유럽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놀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머지 대륙의 정치·외교 수준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by 이기본. 201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