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기본 칼럼

[벨 에포크] 벨 에포크 이전 그림들

1. 르네상스(14~16세기)

<헨트 제단화> 반 아이크


중세시대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주의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반 아이크 등



2. 바로크(17~18세기 초)


<시녀들> 벨라스케스


절대왕정 시기 권위 강조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3. 신고전주의 (18~19세기 초)

<마라의 죽음> 다비드


바로크의 과장에 대한 반발, 그리스·로마로 회귀

다비드, 앵그르 등



4. 낭만주의 (19세기 초)

<태고> 블레이크


신고전주의의 법칙성,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 자유의지 강조

블레이크, 고야 등


낭만주의는 한 번 짚어보고 넘어가자.

'낭만'은 'roman'을 한문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romantic'은 '소설 같은', '그림 같은'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는 '사실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신기한, 공상적인, 감상적인, 과장된, 열정적인' 것을 뜻하는 경멸적인 용어였다.

또 낭만주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고 유행했던 특정 문예사조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시대를 초월해서 보편적인 뜻으로 '고전주의-낭만주의 진동 현상'의 한 축으로 쓰기도 한다. '아폴론적-디오니소스적'처럼. 여기서 '낭만주의'가 이전의 일반적인 '반동주의의 한 부류'라는 평가를 뛰어넘어 '진보성'을 얻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초기의 단순한 '환상'과 '도피' 경향을 가리키는 수준을 넘어 '근대적 교양'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의 바탕으로 진화했고 '계몽을 계몽하는' 생각의 경향이라고도 평가되고 있다. 
낭만주의는 문예사조이기 이전에 정치사조다. 문예사조는 '문예로 표출되는 뚜렷한 생각의 흐름'를 말하는데 모든 문예사조는 사회상의 반영이다. 낭만주의는 계몽시대 이후, 즉 18세기에 프랑스의 사회변화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8 세기 말, 19세기 초, 계몽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불렀고 왕당파와 공화파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 양 진영 모두에서 '비인간성'과 '억압적 권위'를 느꼈던 사람들이 주로 (정치적) 낭만파가 되었다. 즉 낭만파는 뚜렷한 정치적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양쪽 다 싫은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을 정당화 할 수 있는 뚜렷한 논리도 없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부담이 되어 혁명에서 이탈했지만 왕당파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야만적인 무차별주의'처럼 보이는 급진적 자유평등 사상이 부담스러워 전통에 의해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던 봉건제 사회를 그리워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문학과 예술로 도피하기도 했다.  
낭만주의의 키워드는 사랑, 열정, 감성 같은 것이다. 모두 이성에 반하는 개념들이다. '무모한 용기' 같은 것도 낭만주의의 요소처럼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혁명에 몰입하는 사람들도 무모한 용기와 열정, 뜨거운 감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가능성'이다. 적대감을 무너뜨리는 것,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는 것, 사회사상적 권위를 무조건 추종하거나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한에서 사랑과 열정과 용기를 표출하는 것 등이 낭만주의의 핵심 아닐까.
공화파의 과격성이 사회를 퇴보시킬 것을 우려했던 에드먼드 버크는 원래 미국 혁명은 찬성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빅토르 위고는 평범하고 온건한 보수 인사였으나 나이 들어 현실참여적인 공화파 진보 정치인이 되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성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동년배였다면 서로 교류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 본다. 에드먼드 버크를 '낭만적' 보수주의자라고 하질 않는가.
낭만주의가 전형적으로 소설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신분과 고난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낭만파 소설의 정치적 의미는 바로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끼리의 소통'이다. <레미제라블>에서 전혀 변할 것 같지 않던 장발장과 자베르가 변하고 서로를 이해했듯이. 개인이 거대한 사상의 흐름을 무시하거나 거기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낭만적'인 것이다.



5. 사실주의 (19세기 중반)

<이삭줍기> 밀레


정치, 역사적 사실에 치우친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 서민생활 표현

밀레, 루소, 쿠르베 등



6. 드디어, 19세기말~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고 실천했던 시절. 예술을 위한 예술의 전성기.


1. 인상파, 후기인상파 (19세기 후반)

색깔, 미 자체를 추구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시슬레, 고흐, 세잔, 고갱

2. 야수파(20세기 초)

모든 자연주의에 반발, 강렬한 표현과 색깔 선호

마티스, 루오

3. 입체파(20세기 초)

형태의 변형을 통해 작가의 주관 표현

피카소, 브라크

4. 추상파(20세기 초)

형태의 단순화, 상징화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등등... 이 외 미술사조에 대해 너무 구별하고 고민할 필요 없다.


(by 이기본. 201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