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1974~)
2015년 1월 22일, 'jtbc 뉴스룸'에서 앵커 손석희가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주로 드 보통의 책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최민우, 문학동네, 2014)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는 언론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과 언론이 억지로 중립을 지키려 하는 것은 '좋은 입장 또는 좋은 편견'을 가지느니만 못하다는 것 정도였다. 또 좋은 언론을 위해서 언론의 '자유'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고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랭 드 보통(1969~)
나는 재작년까진 드 보통의 책은 주로 사는 편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드 보통을 가리켜 '별로'라고 언급한 이후 사지 않게 되었다. <뉴스의 시대>는 그 이후에 나온 책인데, 난 작년에 서점에 서서 휘리릭 읽었다. 기억 나는 내용은 정치 뉴스를 접할 때 '정치란 단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내용이다. 이는 그가 인터뷰에서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왜곡보도' 등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뉴스가 너무 난무하고, 따라서 대중의 관심사가 시시때때로 바뀌면서 정작 중요한 뉴스의 본질을 놓치게 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또 드 보통은 요즘 언론은 사건이 벌어지면 너무 빨리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문제라며,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을 언급했다. 조현아는 앞으로 일도 못할 것이고 그 개인으로 볼 때 엄청난 비극이라는 관점도 있다고 했다. 드 보통은 요즘 대중이 엄청난 불행으로 가득한 뉴스를 접하고 '나의 삶은 좀 낫구나'하는 위안을 얻는다는 자기 주장의 맥락에서 조현아 사건을 언급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을 접하고도 10분 안에 잠들 수 있는 우리들의 생활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조현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나도 꽤 즐거워했다. 사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진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반대 상황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진리다. 타인의 불행이 가장 통쾌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특히 부자나 권력자가 곤경에 처했을 때다. 게다가 조현아 같은 '폭군'이 겪는 비극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와 혐오감, 거기에 따르는 은밀한 행복감은 정의감으로도 포장할 수 있기 때문에 한층 더 아늑한 느낌을 준다.
라 로슈푸코(François VI, duc de La Rochefoucauld, 1613~1680)
문제는 우리가 가까운 사람의 불행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라 로슈푸코(François VI, duc de La Rochefoucauld, 1613~1680)는 1678년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겪는 불행 속에서 우리는 항상 불쾌하지만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한다"고 인정했다. (《거짓에 관한 진실》에서 재인용)
《거짓에 관한 진실》(볼프 슈나이더/ 이희승, 을유문화사, 2012/ 2013)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Wolf Schneider 1925~)는 그의 책 《거짓에 관한 진실》(볼프 슈나이더/ 이희승, 을유문화사, 2012/ 2013)에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심리에 대한 항변'을 한다. "불행, 실패, 재난의 희생양을 보고 기쁨을 드러내는 것은 혐오스러운 행동'이지만 '우리가 이런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착오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런 '은밀한 위안'을 거부한다면 해를 입은 사람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지만 우리 삶의 질에는 손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감정에 대해 좀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술과 달리 비용이 들지 않고 몸에 해롭지도 않은 위로이기도 하다.
슈나이더가 너무 나갔을까? 슈나이더는 이런 위안을 찾는 것에 인색한 사람에게 '인간의 본성을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충고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에게 '얼마나 도덕성이 고매한 인물인지 모르지만, 결국 '인간혐오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격한다.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남의 불행을 즐기거나 (슈나이더는 비가 오는데 악단을 불러 야외에서 연주를 시키고는 번개가 치는 와중에 흠뻑 젖은 연주자들을 보고 깔깔대는 어떤 부유한 과부를 예로 들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우리의 기쁨을 드러내거나,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은밀한 즐거움에 죄의식을 가지며 괴로워하지 말자는 생각에 공감했다. 더 나아가 내가 혹시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은밀한 기쁨을 방해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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