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 지음
문명을 단호하고 용감하게 ‘서양’ 그리고 ‘나머지’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이 책의 시각은 ‘서양’이 아니라면 그 어떤 지점에 서있는 사람에게도 거북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서양’이라는 낱말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 체제, 문화, 종교와 민족등등의 특성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다른 세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차별점도 ‘기타등등’이라는 하류체계로 떠 밀려 내려가는 듯한 부당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불편함의 근거는 ‘서양’에 속하지 못한 문명이 느끼는 소외감의 문제라기 보다는 비교하는 두 대상이 애초부터 비교 할 수 있는 것이었느냐라는 ‘의제의 정당성’에 있다.
예컨대, 어떤 모임의 구성원이 A,B,C라는 세 사람이라면, A는 B와 사뭇 다른 특성을 가질 수 있으며, C와도 합일되지 않는 개별성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A가 B 또는C와 다른 점을 갖는 다는 점이 서로 확연히 다른 성격을 가진 B와 C 를 하나로 묶어 놓을 논리적 기반이 되는 것일까? 그것으로 충분한 기반이 되는 시나리오는 하나, A가 ‘나(주체)’이고 B와C는 ‘남(객체)’일 때 뿐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 책은 결국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양이 패권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한 다소 편협한 분석이다.
이러한 접근이나 분석이 옳고 그름을 논할 처지는 못된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패권 문명으로 우뚝 선 서양 문명이 어떻게 패권을 잡는데 성공했을까에 대한 객관성있는 분석이 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에 따르면 서양에 패권을 안겨준 서양만이 가진 6 가지 특성은 1.경쟁 2.과학혁명 3.사유재산 4.현대의학 5.소비 6.직업 (윤리) 이다. 각각의 주제는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종교개혁과 사유재산 개념이 가지는 연결고리는 특별히 흥미로웠지만 기독교가 중국 (동양)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이 중국문명에 사유재산 개념을 심는데 실패하게 만들었고 결국 패권을 위한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동의하기 어렵다. 작가인 니얼 퍼거슨, 역사학자로서 그가 주요연구 과제로 삼은 것은 ‘돈(Capital)’이라고 한다. 다른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작가가 ‘서양’이 ‘나머지’를 모질게도 괴롭혔던 지난 날의 제국주의를 다소 옹호적 입장에서 바라 보는 이유도 물질의 흐름과 산술적 결과에 집중한 역사시각에 의한 것은 아니었는지 또한 큰 아쉬움이다.
이 책은 2011년 21세기 북스에서 번역출간했는데 띠지에는 이 책이 2012년 삼성연구소가 선정한 CEO들을 위한 권장도서였다고 자랑스럽게 광고하고 있다. 좀 야박하게 평가하면 장사꾼들에게는 제법 교훈이 될 만한 책이긴 하다. 문득 책이 발간된 '서양'의 독자 반응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반즈앤노블 (Barnes & Noble, 전자책에 맥을 못추게 되기 했지만 그래도 아직 미국 최대 도서 판매기업)은 평점 5점에 3.5점, 독자 리뷰란에서 왜 좋은지를 밝히는 의견을 다수 발견했지만 저평가 리뷰는 이유를 달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오디블 (Audible, 요즘 뜨고 있는 듣는 책)에선 700여명이 넘는 리뷰의 평점이 무려 4.5다. 리뷰도 격찬일색이라 어쩐지 낯뜨겁다 ('서양'의 자랑인 다양성은 어디 숨었나?). 그들과 내 평점이 갖는 간극은 역시나 '서양'과 '나머지'의 입장차이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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