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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과학

[책] 윗층에 사는 그녀에게


만약 당신 윗집에 이사할 이웃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가? 장난끼 가득해 보이는 개구쟁이 남매가 있는 가족이라면 안타깝게도 제일 먼저 아웃리스트에 올라 갈 것이다. 피어싱이 가득한 귓볼에 은귀걸이들이 치렁치렁한 어설픈 롹커도 아웃이고, 뭐든 악기 연주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거나 음악에 심취한 사람도 일단 보류. 남의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하는 호기심 오지랍 아줌마는 어떤가? 윗층 소음에 밤잠을 설칠 가능성은 낮을 지 모르지만 내 사생활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진 않을까? 호기심 아줌마도 역시 노땡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서른이 훌쩍 넘을 때까지도 부모와 함께 살았다. 머리에 피만 마르면 집을 떠나는 서양의 관습을 생각하면 그는 요즘 들불같이 유행하는 '캥거루 족'의 시조격이라 할 만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드디어 집을 나와 독립생활을 하게되는데 어머니의 별난 과보호 아래에서 울트라 예민둥이로 자란 푸르스트의 인생에 뜻밖의 침입자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윗집에 살던 이웃이었다.  

파리 하우스만 가 102번지 3층엔 미국인 치과의사 챨스 윌리엄즈 (Charles Williams)의 치과 병원과 챨스의 부인 마리 윌리엄즈 그리고 그의 어린 아들이 함께 사는 보금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랫층엔 한 여름에도 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살아야만 하는 만성 천식환자이자 한 때는 사교계의 왕자,푸르스트가 살고 있었다. 마리 윌리엄즈는 이 때부터 약 10여년 간 (1908~1916) 문장능력이 각별한 아랫층 이웃으로 부터 편지를 받게된다. 항상 '부인(Madame)'이란 말로 시작되는 편지는 언제나 상냥하고 전혀 무례하지 않았지만 소음을 줄여달라는 집요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저를 너무 지각없는 사람이라 생각지 말아주십시요. 지난 며칠간 소음이 너무 심했답니다. 저는 건강하지 못해서인지 소음에 더욱 민감하답니다."

"아침에 망치질(치과병원용 망치)을 꼭 하셔야겠다면 저희 집 부엌이 있는 쪽에서 하시면 안될까요? 침실쪽 말구요."

"주말에 너무 시끄러우면 전 오후가 되도록 침대에서 꼼짝도 못한답니다."

"Lettres à sa voisine" (구글 번역기에 따르면 "그녀의 이웃에게 보내는 편지"이나 좀 아귀가 안맞는 듯, "이웃여자에게 보내는 편지" 쯤이 아닐까 싶음. 불어할 줄 아는 사람이 아는 체 해주길 부탁함)는 푸르스트가 윗층에 살던 마리 윌리엄즈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엮은 책으로 지난 가을 프랑스에서 발간되었다. 푸르스트의 편지들이 윗집 소음을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었는 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10여년 동안 이어진 편지에는 진정서격인 하소외에도 이웃간에 나눌 수 있는 작은 인사와 위로도 함께 따뜻하게 풀어 놓는다. 

"편지를 읽는 동안 당신의 귀여운 아들 (순진무구한 소음으로 저를 귀챦게 하는)이 곁을 맴돌고 있다면 제 안부를 전해 주십시요."

"당신에게 닥친 불행을 전해 듣기까지, 저는 하느님께서 제게 더하실 슬픔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답니다." (마리 윌리엄즈의 동생이 전사햇다는 소식을 듣고)


간밤에 윗층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젼 소리에 잠을 설치진 않았나? 아니면 우루릉 쾅 여닫는 문소리에 깜짝깜짝 놀랜 적은 없는지? 내가 사는 집의 옆집 아이는 한 번 울음이 터지면 지치지 않고 30분씩 울 수 있는데다 그 울음소리도 굉장하다. 다음에 옆집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침실벽을 타고 울리면 푸르스트처럼 편지를 써 보내 볼까? 작은 사탕봉지도 함께.

"당신의 귀여운 딸은 진짜 좋은 목청을 지녔군요! 하지만 제 연약한 귀가 가끔 좋은 소리를 다 소화하지 못하는 때도 있답니다. 고 귀여운 아이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거든 제 사탕을 선물로 전해주실수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