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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한국 특수교육 유감 4

발전 없는 대화를 나눠봤자 시간낭비였다. 그리고 "분수를 배울 필요가 없다"던 그녀에게 볼장 다 봤다는 판단이 섰기때문에 대충 면담을 마무리하고 개별학습실을 나서려 했다. 그녀가 "그럼 시흔이 수업은 일반반에서 하는 걸로 알겠다"고 굳이 확답을 받으려 했다. 나는 속이 뒤틀려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붙여두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직함을 주는 그 일을 재빨리 솎아내야 할 바오밥나무 종자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안 그랬다간 개별학습실의 태평을 방해하는 '공부시키기' 우환이 닥칠 것이니. 나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그것이 특수교육의 현실이라면 과연 다른 학교는 어떤지 좀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특수교육청 담당관을 찾아갔다. 사실 그녀는 담당관이라기보다 여러 명의 공무원들 중 내 얘기를 잘 들어준 한 사람이었을뿐이다. 그녀에게 학교 면담내용을 모두 전했다. 소탈하고 진실한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의 경험으로, 그런 특수교사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교사와 대놓고 싸우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라고 말했다. 과정이 어떻든 시흔이에게 도움을 주도록 하는 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카드를 남겨둔 셈이니까. 나는 "결과를 몰아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인데, 그건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특수교육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학교현장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담당관은 두 학교를 소개하고 직접 전화까지 연결해 주었다. 

 내가 견학한 학교들의 경우 교사들의 태도가 모두 훌륭했고 그 덕에 아이들이 12명에 이르렀다. 개별학습실의 수용인원을 초과한 것이다. 나마저 전학 가능성을 문의했으나 단호히 거절당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교사들의 분명한 메시지는 개별학습실이 정상적으로-즉, 성의 있게- 운영될 경우 3년이 지나면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건 수년간의 병원치료를 통해서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흔이 학교 특수교사를 안다는 한 사람은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흐렸다. 특수교육청 담당관과 견학학교 교사들의 공통점은 있을 자리에 있는 사람의 미덕이었다.   

다시 만난 특수교육청 담당관이 의견을 제시했다. 시흔이 학교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넣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개별학습을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올 것이고, 그 때 특수교육청이 공문을 보내 수업중단 결정이 내려지기 전, 학교장을 포함한 관계자 회의를 열 것이며, 그 내용을 교육청에 보고하라고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시흔이를 위해 담당관이 쥐어짜낸 고스톱판이 펼쳐지게 되었다. 담당관은 비록 감독관청 소속이나 직급이 높지 않고, 학교현장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점, 그녀 역시 특수교사 출신으로 각 학교 교사들과 아는 처지라는 곤란을 무릅쓰고 최대한 방법을 찾아 준 것이다.   

얼마 후 특수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내가 원해서 개별학습을 중단했지 않느냐고 슬쩍 넘기며,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고 전했다. 시간과 장소를 알린 후 회의는 간단히 진행될 거라며, 간단히 진행되길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지적 장애아의 부모도 지적 장애로 속단하지 않고서야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만천하에 떠들고 다녔을 "부모 스스로 수업 중단"을 내게까지 세뇌하려는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회의 당일 참석자는 교장, 교감, 담임교사, 교무주임, 특수교사 등 학교관계자 다섯 명과 나였다. 인원으로 보아 일이 커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장이 도착할 때까지 분주한 특수교사를 제외한 다른 교사들과 환담을 나눴다. 시흔이가 전교에서 두번째로 일찍 등교한다는 사실이 대화를 이어줬다(뒤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