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후 다시 학교에 들렀다. 특수교사가 시흔이를 만나 발달상황을 직접 평가한 후 이뤄진 첫 정식 면담이 있었다. 그녀의 결론은 개별학습실 수업이 시흔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시흔이보다 중증이어서 차라리 일반반 학생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했다. 나는 개별학습이란 수준별 수업인데 중증학생들의 수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었다. 왜냐면 시흔이네 학교는 그해 개별학습실을 신설했기때문에 대상자가 3명에 불과했고, 따라서 학습에는 더 없이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교사는 아이들의 수업이 겹칠 경우 개별적인 수업이 아니라 학원식 평준화 수업-예를 들어 자습식 문제풀이와 채점-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청하지도 않은 다른 아이들의 수업교재를 펼쳐 보이며,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인 그들과 같이 평준화 수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아이들이 거칠고 너무 문제행동이 많기때문에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권하는 것이지 개별학습실에 오는 걸 말리려는 게 아니며, 시흔이처럼 사회성 장애나 문제행동이 없는 학생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습이 아니라 문제행동 통제를 개별학습실의 존재이유로 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ㅎㅎㅎ, 누구를 위한 통제일까?
특수교사 두 명이 학생 세 명의 수업을 교육청 취지대로 수행할 수 없는 이유가 중증아의 존재와 그에 따른 수업의 하향평준화에 있다는 열정적 설득은 효과가 있었다. 이미 첫 만남에서 결론이 임박했었다. 저런 인간들한테 아이를 맡길 수는 없다. 중증아도 그렇지만 정신지체 3급이나 경계선 아동의 경우 학습이야말로 존엄한 삶으로 이어진 외길이다. 또한 3급과 경계선 아동은 효과가 크기때문에 더욱 학습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지속적 자극을 받으면 언젠가 장애라는 타이틀을 벗어날 가능성도 크다. 이런 자극이 가정단위의 치료나 불규칙한 홈스쿨링 테두리 안에서만 이뤄지기때문에, 또 그것이 장기적 과정이기때문에 결국 가능성의 문이 닫혀버리는 것이다.
인지치료를 배제하는 국가지원과 발맞추기 위해 개별학습실도 진정한 학습을 포기했을뿐이라면 차라리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시흔이는 국어, 영어, 수학 주요과목에 대해서만 개별학습을 신청했었다. 기타과목은 일반반 수업을 듣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 학생들의 시간표가 겹치는 상황을 조절할 의지도 없고, 겹친대야 일주일에 몇 번뿐인 상황을 핑계로 하향평준화 수업을 하겠다는 것은 대놓고 "오지마"라는 뜻인 거다. 어차피 각자도생이었다. 새로운 것은 없었다. 다만 간식과 차가 준비된 넉넉한 개별학습실의 주인은 아이들이 아니라 거기서 급여을 받는 특수교사일뿐이라는 발견이 놀라웠다. 그들은 일하고 싶지 않다. 국가가 치료지원보다 중점을 둔 교육지원의 핵심, 즉 개별학습의 취지를 숨기고 학부모를 기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복지 화두가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그들에게는 급여가 있었다. 시민들은 새로운 복지를 꿈꾸지만 나이 든 특수교사 같은 일선공무원은 가능한 한 과거형을 연장한다. 학생 셋보다는 둘이 다루기 쉽다.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문제행동학생은 다른 학생들은 물론 학급운영자인 담임교사를 힘들게 한다. 개별학습실의 통제를 바라는 다수는 특수교사에게 그 일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특수교사 입장에서, 학습은 다수의 강제가 아니라 학부모 개인의 것이다. 그것이 문제행동 통제보다 더 근본적인 학교의 기능임에도 내가 만난 특수교사들은 그 일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것은 습관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사고나 안 나게 아이를 보는 일은 그리 큰 노동이 아니다. 아이들과 한 방에 있기만 해도 시간은 간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집어넣는 일은 그 몇 배의 수고가 필요하다. 시흔이 학교 특수교사들은 그런 수고가 싫었던 것이고, 그래서 개별학습실의 문제행동 통제기능을 과장스레 내세웠던 것이다. "시흔이처럼 사회성 문제가 없는 아이들은 일반반 수업이 더 나아요. 반 아이들한테 주워듣는 것도 많고.."라고..(뒤에 계속)
'정치·경제·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 대통령 개헌반대 의제화를 환영한다 (4) | 2014.01.09 |
---|---|
한국 특수교육 유감 4 (2) | 2014.01.07 |
NYT의 영리한 경영권 방어 (4) | 2014.01.05 |
한국 특수교육 유감 2 (2) | 2014.01.05 |
한국 특수교육 유감 1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