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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스포츠

치명에 대한 치명적 영화, 色戒




색계, 그 이야기


중일 전쟁이 시작되고 너도나도 징병 당하던 시절, 뒤 봐주는 사람이 있는 대학생들은 홍콩으로 피신했다.(예나 지금이나.). 그 중 집안의 형이 징용 당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충문한 잘생긴 한 청년이 있었다. 게다가 청년은 자신의 개인적 증오를 일종의 공익적 신념으로 전환할 수 있을 지능과 화술도 보유했다. 당연히 그 청년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학생들이 모인다. 이 청년을 빛내줄 역할을 할 어리버리한 남자들과 그 청년의 해바라기 여자들. 일본에 대한 보편적 적대감과 뛰어난 이에 대한 개인적 신뢰와 선호가 결합해 최초 조직이 구성되는 건 동서고금 남녀불문의 보편률에 가깝다.


이들은 민족정서를 자극하는 연극을 시연하는 것으로 애국활동을 시작한다. 일종의 문화활동인 셈이다. 하지만 이 청년,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친구들에게 일본의 앞잡이, 특무기관(제스필드 76호)의 대장(양조위)을 암살하자는 제안을 한다. 문화애국활동에서 친일분자 암살로 활동의 초점을 갑작스레 바꾼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군계일학의 빛나는 외모와 흔들리지 않는 눈빛은 모두를 설득해 낸다. 어찌보면 의아할 정도로, 이 무리한 요구를 모두는 수용한다. 여기까지가 1막이다.

 

대개 이런 인원 중 1인 정도는 재력이 있다. 색계도 마찬가지다. 고향의 부친을 속이고 상당한 자금을 이 암살 작전에 '꼴아박는다'. 이들의 작전은 역할극이 중심이다. 미모 있는 아이(탕웨이)와 덩치 있는 아이는 부부행세, 잘생긴 아이는 주변 지인(선생), 돈 많은 녀석은 운전기사, 존재감이 조금 떨어지는(잘생긴 아이를 사모했으나 이쁜 친구와 잘생긴 아이가 살짝살짝 눈 맞는 거 보고 좌절한) 여자아이는 대기조다. 먼저 특무기관에 있는 대장 학생의 선배를 활용해 특무대장(양조위)에게 접근한다. 선배를 이용하는 방식은 역시 요즘처럼 술과 여자다. 어설픈 이들의 역할극은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탕웨이가 마작 중독인 양조위 부인과 가까워 진 것이다. 이 친분을 활용해 탕웨이는 은근슬쩍 양조위에게  작업을 걸어 양조위가 탕웨이의 거처(암살조의 아지트)까지 오게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양조위는 집에 들어서지 않고 문에서 발을 돌려 버린다. 가히 당시 최고 특무기관의 대장 다운 의심력.


이 암살조는 최후의 방법을 생각해 낸다. 어린 녀석들이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색계色計'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섹스로 기회를 만들기로 한 것. 그러나 탕웨이는 경험이 없는 처녀다. 이 청년들은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결국 이들 중 유일하게 성경험이 있는 어리버리 1인이(그것도 창녀촌에서만 섹스를 경험해 본 띨띨이 녀석이다) 탕웨이에게 방중술을 가르치기로 한다. 지금까지 '신나게 달려온' 이들의 분위기는 이 순간부터 가라 앉는다. 방중술이 단기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겠는가. 탕웨이는 사랑했던 남자를 눈 앞에 두고, 아니, 그 남자의 결단에 의해 띨띨이와 규칙적으로 동침하며 방중술을 습득한다. 침대 위에서 그녀의 몸놀림이 숙련될 수록 그녀의 눈빛과 뒷모습은 정체 모를 우수에 젖는다. 이들은 작두 위에 처음 올라타는, 그것도 내림굿도 제대로 받지 않은 무당과 같아 보인다.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며 대책 없는 대책을 실행하고 있던 이들은 곧 절망한다. 왕정위 정권의 사정에 따라 양조위가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때마침 이들은 오랜만에 밝은 분위기에서 춤을 추며 기운을 고양하고 있었는데, 양조위 부인이 이사를 알리는 전화를 걸어 온다. 탕웨이는 부인과의 통화에서 '한 번이라도 뵙고 인사를 드리겠다'며 절규하지만 부인은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 희망의 끈이 잘려 나갔다. 


설상가상. 아지트를 정리하고 있던 이들에게 불청객이 찾아온다. 바로 이들을 양조위에게 접근 시켜 준 특묵기관의 그 '선배'다. 양조위의 갑작스런 전출로 실직자 신세가 될 그는 이들을 협박하며 돈을 갈취하려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돈이 어디 있겠나. 아니, 있어도 줄 기분이겠나. 결국 선배는 이 어리버리한 반일투사들의 첫번째 '숙청대상'이 되고 만다.  영화 친구의 동수처럼 무수한 칼침을 맞고 목이 꺾인 채로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은는다. 비참 3단 콤보 객사. 그러나 이게 무슨 기쁜 일이겠나. 탕웨이는 허무함, 상실감,  허탈감 등이 어우러지는 눈빛으로 홀로 뛰쳐 나간다. 여기까지가 2막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홍콩에서 홀로 뛰쳐나간 탕웨이는 상해 이모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영국에 사는 아버지의 연통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적적함을 일본어 수강과 예전부터 좋아하던 영화 감상으로 달랜다. 이제 1막에서 볼 수 있었던 빛나는 그녀의 눈빛은 '상실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어디서인가 그녀의 인생을 망쳐버린 느끼하게 잘 생긴 그 대장 청년이 갑자기 찾아 온다. 한적한 중국 찻집에 앉아 그는 분주하게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 때는 프로가 아니라서 실패 했으나 이제 자신은 프로들이 모인 조직에 속해 있으니 다시 도전해 보자는 이야기. 탕웨이는 그를 따라 조직의 대부를 만나 프로팀 합류를 결정한다.


아름다운 미모, 총명한 두뇌, 암살 대상과의 친분, 이 세 가지 조건은 탕웨이가 양조위 암살에 있어 최적인 이유다. 그녀는 전문 스파이 훈련을 훌륭히 수행해 내고 홀로 양조위 집으로 향한다.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건, '아무 기대' 없이 환히 웃으며 맞이해 주는 첫번째 사람이 양조위의 부인이란 아이러니. 이 때 양조위는 중국의 비시 정권과 같은 양정위 정권(친일정권)의 툭무기관장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국정원장-기무부대장을 합쳐 놓은 자리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의 수장을 동시에 맡은 전두환처럼 그는 국가 정보를 모두 쥐는 요직에 있었던 것이다. 암살의 필요가 더 커졌음은 당연하다.


프로 조직의 후원이 있으니 이번엔 마작 밑천이 두둑하다. 부인과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는 양조위와 '우연'히 접촉할 확률이 높아졌단 뜻이다. 확률에 근거한 우연의 반복은 필연으로 규정되는 일로 발전하게 되기 마련이다. 탕웨이와 양조위는 몇 차례의 강력한 눈빛 교환에 이어 양조위의 안가 같은 호텔에서 거친 1차 정사를 나눈다. 이어 탕웨이의 프로페셔널한 고의적인 도발/앙탈이 양조위를 자극해 집 안에서 과감히 2차 정사를 한다. 이후 탕웨이와 양조위의 눈빛,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진다. 다정한 기운이, 이상하게도 감돈다. 이어 반일인사를 고문한 양조위는 '무언가에 고조된' 상태로 탕웨이를 거칠게 다룬다. 영화 속의 3차 정사다. 이 부분이 압권이다. 명분과 대의로 덕지덕지 덧칠 된 일상에서 윤리적으로도 일상적으로도 기괴하게 꼬여 있는 그들의 섹스는 순정처럼 보여지는데, 이게 3차 정사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탕웨이는 이 이후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처절하게 몸으로, 땀으로 달려오는 양조위가 진짜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저열할지라도, 저열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양조위를 그녀가 '원하기' 시작한다. 더 결연하고 엄중한 임무 수행을 요구하는 암살 대장에게 탕웨이는 이 사실을 울부 짖으며 고백해 양조위에게 가족 모두를 잃어버린 대장과 탕웨이를 사모하면서도 밝히지 못한 잘생긴 청년 모두를 경악하게 한다.  잘생긴 청년은 아연실색해 뒤늦게 탕웨이이게 다가가지만 "그 때 잘하지" 한 마디로 거부당한다. 하지만 탕웨이의 혼란과는 별개로 암살 계획은 점점 완전해 진다. 


그 까다로운 의심병 환자 양조위를 암살할 최적의 계획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조위에게로부터 나온다. 변화는 탕웨이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양조위에게도 있었다. 양조위는 탕웨이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자신의 부인이 계속 졸랐던 다이아몬드 반지. 이 깜짝쇼의 장소가 바로 암살조가 선정한 양조위의 처형 장소였던 것이다. 양조위와 탕웨이는 서로에게 전혀 다른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 여기까지가 3막이다.


양조위를 지옥으로 보낼 그 장소에 짙게 립스틱을 눌러 바른 그녀와 설레여 보이는 양조위가 함께 도착했다. 반지가 등장한 그 결정적 순간, 죽음의 순간이 목전에 다가온 줄 모르는 양조위는 처음 맞는 '진짜 마음'을 표상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서 '누가 욕심내면 어떡하냐, 못 받겠다'라며 웅얼거리는 탕웨이에게 "내가 지켜줄게"란 '주제 넘는' 한 마디를 건낸다. 매번 '보내고 밀어버리는' 대의와 공의는 여기서 무너졌다. 탕웨이의 결연함은, 오랜 고통과 시린 세월은 그 순간 무너졌다.


그녀는 풀려버린 눈으로 양조위에게 "빨리 나가"라고 권한다. 처음 양조위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탕웨이가 절실함을 담아 "빨리"라고 재차 권유하자 양조위는 그 뜻을 알아 챘다. 탕웨이의 그 때 눈빛은 그 만큼 진짜였다. 이 정도면 대개 여자와 함께 "너오 함께라면 지옥까지라도 가겠다"라고 할 법하지만 우리의 양조위, 그대로 그리고 정말로 재빨리 전력으로 도망친다. 총성이 울리고 암살자와 암살대상자는 혼잡한 상해의 한 거리를 그렇게 수놓았다. 


탕웨이는 힘이 풀려 그 보석점에서 나온다. 일을 망쳐버린 것이다. 이미 한번 망쳐버린 적이 있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 일이다. 게다가 이번엔 '암살대상자'가 이 일을 알아버린 상태니 더 절망적이다. 그러나 탕웨이는 2막 마지막과는 다른 표정이다. 인력거를 탔지만 비상사태로 도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주변을 보며 인력거꾼과 대화를 나누며 미소까지 짓는다.   


돌아온 양조위는 헉헉거리고 있다. 이제껏 조용히 그를 수행하던 심복은 갑자기 이 '암살조'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다. 특히 탕웨이의 정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단 사실'까지도.  양조위는 아연했으나 심복은 '당신과 그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양조위도 '의심'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심복은 '진실'을 위해 탕웨이를 어떻게 고문할 것인가를 물어온다. 양조위는 심복이 탕웨이에게 압수해 돌려주는, 자신이 탕웨이에게 전하려 한 선물인 다이아몬드의 소유권을 구차하게 부정하면서도 탕웨이에 대한 고문을 막는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지금, 고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빠른 사형 집행' 뿐이다. 다이아몬드를 정인情人에게 주려 했던 양조위는 불과 몇 시간 뒤 죽음을 선물하게 됐다.


탕웨이 일파는 모두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폐광으로 끌려가 사형 집행을 앞둔다. 보안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난 탕웨이. 그 누구도 탕웨이를 원망하지 못한다. 누구는 비굴하게 애걸하고, 누구는 어설프게 개기며 삶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잘생긴 청년은 분노도 회한도 아닌 눈빛을 탕웨이에게 던져 보지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탕웨이의 눈빛은 비어 있는 상태다. 탕웨이는 그렇게 죽었다.


한편 양조위 집은 양조위의 부하들에게 압수수색 당한다. 양조위는 겁에 질린 무표정으로 탕웨이의 방에 앉아 있다. 마작 중독인 부인이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자 조용히 "마작이나 하며 놀아. 그리고 누가 탕웨이에 대해 물으면 출장 갔다고 해" 라고 대꾸한다. 그는 여전히 '그'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카메라는 양조위의 미세한 흔들림을 눈빛과 손동작으로 포착하며 강조한다. 그렇다. 이렇게 막을 내린다. 히든 신은 숨겨 둔다.


 




無聲의 팽팽한 진공


지금부터 스냅샷들로 색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탕웨이와 양조위의 눈빛을 중심으로, 슬라이드식의 영화 재구성이다. 기타 인물들은 과감히 생략한다. 이 영화는 이 둘의 진공이 핵심 메시지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애국연극부터 암살모의 시절이다.  대학생 탕웨이의 눈빛은 총명하고 촉촉하다.



잘생긴 대장 청년이 결연함을 담아 느끼하게 반일문화활동을 제안한다. 


수줍게 설레여 하며 제안을 받는 탕웨이.






양조위와의 첫 만남 : 탕웨이, 결의와 긴장



첫 접촉 (비내리는 우산 아래) : 스치다




번호 교환 : 절호의 기회를 잡으려는 탕웨이와 품 안의 먹이를 잡으려는 양조위






 

첫 데이트 : 치파오 입은 탕웨이에게 ‘색’을 발견한 양조위(탕웨이 옷 갈아 입을 때 재빨리 탕웨이의 정체에 대해 주인장에게 물어보는 철두철미함이 조금씩 사그러짐), 어설픈 표정과 유혹을 시도하는 탕웨이,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는 양조위









처참한 실패, 탕웨이의 좌절 : 탕웨이의 유혹에도 집 안에 들어가지 않은 양조위, 그 일로 사랑하지 않는 떨거지에게 방중술을 배우게 된 탕웨이, 말 한 마디 없이 이사가는 양조위(아마 이 때, 탕웨이는 ‘공작 실패’ 부분 말고도 충격을 받았을 것. 이사 통보 전화를 받을 때 그녀의 눈빛은 매우 복잡미묘).





 

재회 : 프로가 되어 돌아온 탕웨이와 그런 그녀를 모호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양조위.



 

첫 정사 : 어설픈 기 싸움을 시도하다 양조위의 벨트신공에 당하는 탕웨이. 두려운 눈빛. 양조위는 사냥꾼의 눈빛. 양조위, 방을 나가며 코트 던져줌. 탕웨이, 서서히 미소 지음. 이 미소의 의미는, 작전 성공의 의미, 그리고 자기해방의 의미가 아닐까.

(이 때 양조위가 탕웨이 머리채 잡고 벽에 내리치고 어쩌고 하는 모든 과정은, 양조위가 대본 없이 한 것임. '3년 동안, 한 여자를 상실해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니' 라는 감독의 물음에 양조위는 이 연기로 대답.)










 

두 번째 정사 : 양조위 부인이 나가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 탕웨이. 양조위에게 고도의 심리전 구사, 양조위의 진심 일부(난 누구도 믿지 않았고, 그래서 죽지 않았다)를 얻어낸다.  둘 다 정사 때의 눈빛이 조금 달라짐. 서로를 마주 보기 시작.







양조위의 사무실 : 극장에서 잘생긴 청년 대장 접선 당시, 탕웨이는 심리 일부를 표출. 양조위의 정황을 보고하며 질투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늦은 시간, 양조위 사무실에서 탕웨이는 공작과 진심표출을 동시에 진행한다. 양조위는 묘한 눈빛으로 그런 탕웨이를 감싸 안음. 이 때 양조위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스스로 비꼬면서' 이야기를 함. '자기' 이야기를 함.






 

세 번째 정사 : 출발 할 때 양조위,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저열함을 그대로 표출.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 정사 때, 양조위 눈이 완전히 풀림. 믿는 것임. 안기는 것임. 탕웨이, 그를 죽일 수 없음에, 그의 파괴적인 몰두에 오열한다. 아픔 때문이 아니다. 날 것 간의 소통에서 얻는 해방의 희열과 암살 임무의 중첩이 온전히 모순되기 시작한다.









탕웨이의 좌절 : 암살조직 대장을 만난 자리. 진심을 고백. 양조위만이 스스로를 ‘안다’고 소리친다. 아무도, 그 누구도 탕웨이의 절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 수 없다. 그렇다. 모두 탕웨이를 ‘수단/도구’로 대할 때, 양조위만이 ‘양조위 그 자체’로 그녀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것은 암살 대상인 양조위 뿐인 기묘한 현실.

 



일본 요리집 : 일본이 패망으로 달려가고 있을 무렵이다. 양조이는 한 일본 요정으로  탕웨이를 불러낸다. 열린 문틈으로 일본군 고위장교가 지나갈 때 난감해 하는 양조위를 위해 탕웨이는 센스 있게 문을 닫아 준다. 한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의 처지와 자존심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 이런 그녀를 보는 양조위의 눈빛은 흡사 ‘엄마보는 아기’다. 첫 정사 때의 눈빛은 이제 없다. 이어 양조위에게 탕웨이는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연인의 노래다. 노래의 말미, 탕웨이는 양조위의 손을 잡는다. 양조위는 그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을 보인다. 섹스가 아닌 손잡음. 이 장면은 바로 이 영화 속에서 이들의 4번째 정사며, 정사의 절정이다.  이제 둘 다 서로를 확인한다. 대개의 연인들의 시작이 그들에겐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다가왔다. 여기서 그들은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두 배우는, 호흡, 눈빛, 떨림 모두가 어울린다. 이 영화의 백미.

















파멸의 전복, 다이아몬드 : 다이아몬드 서프라이즈. 탕웨이의 ‘흔들림’과 양조위의 ‘확신’이 교차. 탕웨이는 암살과 자살의 사이에서 흔들리고, 양조위는 그녀에 대한 확신으로 파멸로 가고 있었음. 그것을 탕웨이의 ‘콰이조우:어서 나가!’ 한 마디가 전복. 양조위, 정말로 재빨리 나감.

   









최후 : 암살조직 대장 제외, 모두 체포. 탕웨이를 향한 양조위의 마지막 선물, ‘무’고문. 모든 것이 끝날 때, 탕웨이와 양조위의 공허한 눈빛이 공유되는 것.






 


‘치명(致命)


이 영화의 핵심은 한 마디로 갈음할 수 있다. 바로 ‘치명(致命)’.


명적인 것은 외피와 본질이 따로 놀지 않는다. 치명적인 것은 그것이 그 누구/누구들의 기준과 부합하든 말든 자기 기준에만 집중한다. 치명적인 것은 주변을 파괴시킴. 주변의 마음들이 스스로를 잃게 한다. 너를 소유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게 소유되어라 라고 휩쓸어버리는, 독특한 것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단순한 것이다. 오히려 거창한 위선이 거세되어야만 한다. 


양조위는 탕웨이의 춤과 노래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만일 그 타이밍이 조금 더 앞쪽이었으면, 그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그가 눈물을 흘려도 될 때 탕웨이는 양조위라는 뱀을 가슴 깊이 새겨버린 상태였다. 만일 그 눈물이 탕웨이가 암살조직 대장에게 절규하기 이전이었다면? 


비오는 날 말 없이, 그러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우산을 씌어주며 처음 접촉했다. 이어 프로가 되어 돌아온 그녀가 양조위에게 '대장님 선물은 준비해오지 못했다'고 말했을 때 양조위는 '사람이 온 걸로 됐다' 는 수식 없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매번 이런 식이다.이미 사전정지 작업은 충분했다. 잘 생긴 그 청년대장은 이것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는 치명이 없는 사람이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흔들림은 결국 흩날리게 되는 것.


   

색계, 色戒, 경계할 수 없는 것을 어찌.  



상해에서, 재회한 순간, 선물이 없다는 탕웨이에게 양조위,

人来就好    










PS. 간단한 소개


ㄱ. 감독 소개 / 이안(李安, lee an)

http://movie.daum.net/movieperson/Biography.do?personId=857&t__nil_main_introduce=more


링크 해둔 곳에는, 이안 감독을 ‘아트’ 중심으로 설명해 둠. 그러나 이 감독은 일본의 ‘이와이 슌지’ 감독처럼 매우 섬세한 ‘음악 안배’를 하는 양반임.(혹시 이와이 슌지감독 했을 때 러브레터‘만 기억난다? 그러면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 꼭 한번 보시길).

 

ㄴ. OST 소개 /(Dinner Waltz)

OST 전체 곡 :http://music.daum.net/album/main?album_id=75160

Dinner Waltz / Alexandre Desplat 소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co105&logNo=100138251696


Alexandre Desplat는 프랑스 영화 음악가. 색계의 간단한 줄거리와 이 사람의 경력 및 음악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조하면 됨. Dinner Waltz, 이 곡은 ‘색계’의 메신저와 다름 아님. 색계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허무 혹은 공백, 늦가을 낙엽 같은데, 매우 절묘한 선택.

 

ㄷ. 시대배경 ‘왕정위는 누구이며, 탕웨이는 왜 색계 출연으로 욕을 먹었나’

http://ko.wikipedia.org/wiki/%EC%99%95%EC%A7%95%EC%9B%A8%EC%9D%B4

이 시대 배경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임. 동남연안을 다 뺏긴 장개석은 중경(충칭)으로 도망간 상태. 일본은 직접통치 하지 않음. 왕정위라는 잘생긴 사람을 내세움. (링크타고 들어가서 이미지 검색하면 핸섬가이를 만날 수 있음) 이 인간은 손문의 유서를 받아 쓴 인간이기도 함. 좌파였었음. 허나 장개석의 그 특유의 꼬장(수준 높은 이승만급)에 두드려맞다가 결국 일본과 손을 잡음. 양조위는 이 시대의 ‘특무기관 대빵’. 고로 모든 애국지사들의 원수인 것임.


헌데, 이 영화 때문에 탕웨이, 중국 영화계에서 완전 쫓겨날 뻔 했지? 혹자는 누드 때문이라고(음모유출?)도 하고, 뭐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다 맞을 것임. 그런데 무슨 이유를 갖다 붙여도 ‘양조위’도 해당될텐데, 왜 양조위한테는 뭐라고 안하는가? 이거 우리 입장으로 돌려 생각하면 간단함.


 일제강점기 - 해방 - 지금까지, 일제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한-일 간 러브러브스토리가 있다면 대부분 ‘조선남자-일본여자’ 구도임. 여자/처녀지/정복대상, 같은 코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조선 남자와 일본 여자의 연애는 마치 조선의 일본 정복 같은 상징코드인 것임(이렇게라도 이겨보고 싶었던 것임). 대작소설 중에 처음 이걸 깬 게 박경리 선생의 토지. 그나마 그 일본인은 졸라 착한 사회주의자/휴머니스트 일본 남자이고, 조선 여자는 터프하고 단단한 캐릭터. ‘환향년’ 과 비슷한 관념. 나라 망치고 여자 지켜주지도 못한 남자들의 이상한 담론 구조 형성. 게다가 여기에 동조하는 여자들도 매우 많음. 여자의 적은 여자인 것인가. 여하튼.


 이 영화는 유명 작가 장아링의 단편 소설을 극화한 것임. 역사적 배경 및 실제 인물 관련되어서는 아래 링크 참조.사실 이 링크만 봐도 영화/역사책 다 본 거랑 비슷하니 참조하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nass&logNo=40126980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