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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본 칼럼

[새로 쓰는 록 역사] 연재를 시작하며


영화 <아마데우스>(1985)의 한 장면



1. 
클래식은 그대로 번역하면 고전음악이다. 보통 중세부터 20세기 전반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인데 클래식이란 말 자체가 장르도 뜻하기 때문에 기존악기를 쓴다든지, 기악형식에만 맞으면 현대, 즉 21세기에 작곡되어도 클래식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클래식 장르의 음악은 거의 작곡되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기존의) 클래식은 운명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기존 음악을 계속 재해석하고 연주하고 감상은 할 것이다). 혹자는 현대의 전위음악이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클래식이 되지 않겠냐는 주장을 하지만 이런 사람은 음악의 인문학적인 성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현대에 극소수가 작곡하는 불협화음을 주로 쓰는 무조음악(atonal music: tone이 없는 음악이란 말이다. a-는 반대말을 만드는 접두어 ^^;)을 일반사람들이 받아들이려면 대략 몇 만 년 정도 더 흘러야 할 것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인문학적인 교육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에 취향정도가 단계적으로 계속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즉 현재의 당신이 베토벤을 듣다가 질려서 당신 아들에게 “야 임마 베토벤 듣지 마. 내가 많이 들어봐서 아는데 결국 들어봐야 화성이 이러이러하고 뻔하니 나중에 질려. 앞으로 전위음악 들어!” 이렇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소리다. 위와 같은 말은 당신이 연애질 시작하는 아들에게 “야 그런 여자 만나지마, 내가 여자 여러 번 만나봐서 아는데 여자는 니 엄마 같은 여자 만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철학, 인문학적인 교육과정과 마찬가지(연애질도 인문학적인 교육과정의 하나이다)로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또 그 과정자체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삶이 녹아있는 것이고 그 취향이란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전체적으로 아주 더디게 변한다. 하지만 패턴은 변할지라도 인문학적인 것이라고 하는 건 거기서 거기다. 성경이 아직 위력을 발휘하고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들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각설하고 요즘엔 과거의 클래식 형식의 음악은 더 이상 작곡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예전의 대중음악이었던 클래식음악이 팝음악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팝음악으로 대체되었는가? 내용적인 면에선 일단 기존의 클래식 형식으로는 나올 만큼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가 중세, 근대의 몇 백 년 동안 작곡된 클래식 곡들을 다 제대로 음미하려면 각 인류의 일생을 다 바쳐도 모자랄 정도이다. (이건 개개인들의 머리수로도 협동이 안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시대적인 면에서 보면 옛날에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이나 햇볕 따뜻한 잔디밭에서 양산으로 햇볕 가리고 긴 음악을 감상할 시간이 있었지 산업화 시대를 맞아 바빠진 현대인들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짧은 팝음악이란 형식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라디오와 녹음기의 보급으로 음악의 주 향유층이 귀족에서 일반 노동대중으로 옮겨가면서 기존의 종교음악이나 기악곡보다는 노동 혹은 축제가요에서 나온 노랫말이 있는 ‘짧은’ 노래들이 대중음악이 됐다. 

클래식은 귀족들의 음악이었고 사실 20세기에 와서야 대중음악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대중음악을 무시하면 안 된다. 현대에도 악기구성과 형식만 좀 달라졌지 팝클래식으로 불릴만한 주옥같은 음악들이 수 없이 작곡되고 있다. 그리고 클래식과 팝을 잘 비교해보면 아주 다른 형식이 아니다. 우리가 팝송이나 대중가요를 듣다보면 형식상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극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주로 소절을 약간 변형해서 세 번 반복한다는 것이다(가사도 거의 같거나 약간 바꿔서 3번 반복된다).  이것은 클래식의 각종 협주곡의 ‘3악장 형식’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의 좋은 예가 John Miles의 'Music'이란 곡이다.) 난 클래식과 팝음악은 근본적으로 길이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컬과 가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지금의 대중음악이다. 

그리고 사실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 넘어온 계기도 자연스러웠다. 미국에서 흑인노예들에게 교회 갈 자유는 보장했기 때문에 흑인들이 클래식의 한 영역인 교회음악을 접한 뒤 시작된 재즈도 토속 흑인음악에 클래식의 영향이 덧붙여진 것이다. 재즈는 서양 대중음악의 시작이다. 사실 시대적으로 음악의 향유계층이 귀족에서 대중으로 교체되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전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생활에 ‘음악’이 없었다. 



조지 거쉰(George Gershwin, 1898년 9월 26일 ~1937년 7월 11일)

거쉰은 전문가 수준의 화가이기도 했는데, 뇌종양으로 요절했다.



2. 
20세기 초반 클래식을 공부하던 수많은 음악가들이 팝음악으로 진로를 바꾼다. 예술에 있어 대중과의 교감이란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귀족음악을 하던 고전기의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후원에 기댈 수 밖에 없어 늘 생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궁핍했던 반면, 현대의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부를 쌓아 새로운 귀족이 된다. 음악가와 청중의 지위가 역전된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음악적 변혁의 시기, 혼란의 시기인 20세기 초에 활동한 유명한 음악가들을 대충 살펴보자. 

쇤뵈르크는 <대지>란 영화의 음악을 맡아줄 것을 제의받은 적이 있고(거절했다) 라벨은 <돈키호테>라는 영화의 음악 의뢰를 받고 3곡이나 작곡했으나 영화에 실리진 않았다. (라벨은 영화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졌다). 그리고 프로코피에프는 <키제중위>라는 영화 외 몇몇 영화음악을 작곡했고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조지 거쉰은 순수 클래식 음악 보다는 영화음악과 재즈작곡이 주업이었다. 

<황야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 <미션> 등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엔리오 모리꼬네는 로마의 유명한 음악학교를 나와 베니스 현대음악 페스티발에 교향곡도 출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항상 돈에 여유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영화음악을 시작했다. 그런데 <황야의 무법자>가 발표될 당시 엔리오 모리꼬네는 레오 니콜즈라는 가명을 썼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순수음악가요, 지휘자란 자부심 때문에 가명을 쓴 것인데 웃긴 것은 <황야의 무법자>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도 자신이 정통 서부극이 아닌 사이비 서부극(마카로니 웨스턴)을 만든데 대한 자책감에 역시 밥 로버트슨이란 가명을 썼다는 것이다. 이후 영화와 음악이 제대로 평가를 받고 유명해지자 세르지오 레오네는 커밍아웃했고 엔리오 모리꼬네도 슬며시 같이 본명을 밝혔다. 

당시의 순수 클래식 음악가가 영화음악이나 팝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은 쪽팔린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미국 현대음악의 자존심 거쉰은 나름대로의 주관이 있었던 것 같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거쉰은 하류인생들이 주인공인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썼고 이곡의 구상을 위해 당시로선 위험을 무릅쓰고 흑인 거주지역에 가서 흑인 영가 연창에 참가하기도 했다. 거쉰이 작곡하고 당시의 인기가수 알 존슨이 부른 대중가요 '스와니'가 음반 판매 250만장의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거쉰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는데, 이후 헐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손을 대 경제공황에도 불구하고 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1930년대 영화들이라 지금 우리가 알 만한 유명한 영화는 없다) 거쉰은 미국의 음악가로 유럽에 음악적으로 영향을 준 유일한 고전음악가로 평가받는데 ‘돈 잘 버는 작곡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유럽에서 더 큰 선망의 대상이었다. 돈을 밝히기로 유명했던 스트라빈스키도 거쉰을 직접 만나 그의 수입을 듣고 기가 질렸다는 일화도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곡을 여러 번 편곡해서 편법으로 돈을 잘 벌기로 유명했다) 

이후 정통파 클래식 음악가들인 엘머 번스타인(<황금의 팔>, <황야의 7인>), 레오나르드 번스타인(<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워터 프론트>), 벤자민 플랭켈(<발지 대전투>, <젊은 연인들>), 모리스 자르(<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앙드레 프레빈(<선셋대로>, <엘머 겐트리>)들의 영화음악 참여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무는데 있어서 영화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기존의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는 아직도 강고하게 남아있다.


(by 이기본. 201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