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1809년에 태어났고 칼 마르크스는 1818년에 태어났다. (마르크스가 샬럿 브론테보다 2살 어리네.) 마르크스는 당시 유행했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공감했고 그 때문인지 역사를 생물학적 진화과정으로 파악했지. '역사는 진보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이유는 진화론의 강력한 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의 한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근대'를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시대를 '인류사의 행복했던 유년기'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근대의 재앙과 질병은 '소외' 때문인데, 소외의 원인은 사회의 기능적 분리 경향 즉 전문화 추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 마르크스는 고대 그리스의 '통합(integrity)사회'를 떠올리고는 때론 향수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국어학자 이오덕(1925~2003)은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 1992)에서 글은 삶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입말(구어체)를 살릴 것과 외래어 표현(중국어-일본어-영어)을 삼갈 것을 책 전반에 걸쳐 조목조목 당부한다. 이오덕이 가졌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이렇다.
"그 옛날에는 소설가고 시인이고 하는 부류의 사람이 따로 없었다. 농사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다. 그래서 삶과 문학은 온전히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모든 삶이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일하는 사람은 일만 하고, 노는 사람은 놀기만 하고, 글쓰는 사람은 글만 쓰고, 노래만 부르는 사람, 춤만 추는 사람, 공만 차는 사람···이렇게 모두 갈려 나갔다. 이것이 발달이라고 진보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어처구니가 없다."
이오덕도 마르크스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요즘은 마르크스와 이오덕의 저런 생각도 널리 퍼져 있지. 이오덕은 초등학교 교사 생활만 40년 넘게 했다. 그는 글쓰기 관련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이 어린 제자들의 문집을 10권 넘게 출판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쓴 꾸밈없는 글이 '삶과 붙어 있는 문학'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던 거지. 아닌게 아니라 난 《우리 문장 쓰기》에서 소개했던 몇몇 글들을 보고 감탄했다. 참 예뻐서...
아이들의 글 몇 편 소개할게.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시장에 가십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쇳덩어리입니다."
(<우리 어머니> 부산 동신국민학교 4년 김순남)
"아기가 남자가 아니라고 집안 식구들은
매일 욕을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수건을 들고
우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 왜 우셔요?"
하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할머니께서는 아기 얼굴마저도
돌아보시지 않는다.
여자 놓든 남자 놓든
엄마 마음대로 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설움만 받고 크는 아기.
어째서라도 나는
아기를 키우고 말겠다."
(<아기> oo국민학교 3년 김은정)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 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 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낀데 한다."
(<엄마의 런닝구> 부림국민학교 6년 배한권)
"나는 집에서 기르는 고슴도치가 불쌍했다. 야생동물이래서 숲속에서 살아가야 되는데……. 고슴도치에게 계란을 주었다. 그런데 고슴도치는 안 먹겠다는 표정이었다. 계란을 까주면 상하고 또 상해서 어느 날은 안 까 주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고슴도치 집을 들여다보니 고슴도치가 가엾게도 죽어 있었다.
다음날 나는 뒤뜰에 고슴도치를 묻어 주었다. 이 일은 내 탓인 것 같다. 며칠 있다가 병아리도 차례로 죽었다. 우리 집은 공동묘지처럼 썩은 냄새가 났다."
(<고슴도치의 무덤> 서울 광장국민학교 4년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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