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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한국 특수교육 유감 8

작년 이맘 때 미국 변호사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미국에서는 거주지 관할 공립학교가 인지, 언어, 운동 치료 등 아이의 모든 특수교육 책임을 지게 되어 있으며 그 과정이나 결과에 문제가 있으면 학부모가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학교 측이 패소할 경우 학부모는 고비용의 사립학교를 포함, 원하는 학교로 아이를 전학시킬 수 있는데, 그 교육비 일체는 해당 공립학교가 부담해야 한다. 장애아 교육에 대한 공립학교의 책임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공립교육에서 장애아, 특히 시흔이 같이 경증 장애아를 대하는 기본 입장은 어떻게 해서든 사회의 일원으로 섞여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목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대한 단단한 신뢰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50년 전 미군포로의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줄기차게 협상하는 미국정부의 모습이 패트리어트 게임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국가 및 사회에 대한 관념의 마지노선을 만들어가는 것이 시민사회의 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마지노선의 단면이 학교의 책임의식이고 학부모의 권리의식이다. 경증장애아는 철저히 부모 소관인 우리나라와 참으로 다른 모습이다.

 

미국에서 가장 대접받는 사람이 장애자란 얘기가 있다. 둘째는 어린이, 셋째는 여자, 넷째는 사지 멀쩡한 남자. 아마도 우리사회는 정확히 그 반대로 배려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소위 복지순위에 있어서는 서유럽, 캐나다, 호주에 비해서도 뒤지는 미국이나마 아득한 세월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몇 년 전에 홍콩에 갔을 때도 공립학교 특수교육에 관한 한 '천국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아동교육에 대한 다음 사례도 있다.  일자리를 찾아 딸 아이 하나를 데리고 필리핀에서 홍콩으로 온 여성의 집 앞에 낮선 사내가 사나흘을 왔다갔다 하며 캐묻길래 경찰에 신고를 했단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교육청에서 보낸 사람이고, '아이가 있는 것 같은데 왜 학교를 안 보내는가 ?'알아보기 위해 집 앞을 탐문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민자의 딸이건 홍콩시민의 자식이건 교육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대의가 길 거리에 걸어다녔다.

 

자폐아인 가수 김태원의 아이도 필리핀에서 교육을 받은지 오래다. 한국 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지금은 아이가 너무 행복해 한다고. GDP는 유일한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시흔이를 완강하게 밀어내는 것이 결국 문화라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두께와 저변이 교육이라는 대의명분의 살얼음을 깨고 나왔을 뿐이라는 걸 안다는 점에서, 특수교사와 교장, 나는 역할극의 배우일지도 모른다. 이 연극은 매우 천박하지만 한 사람은 분명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 사람은 이것이 연극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