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워하고 사랑한다
Odi et amo (오디 에트 아모).
혹시 이런 라틴어 구절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I hate and love. 나는 미워하고 사랑한다 라는 뜻이다.
미워죽겠으면서도 사랑하고 있는, 형벌같은 상태.
‘오디 에트 아모’는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카툴루스의 두 줄짜리 시에서 온 말이다.
(라틴어 원어로 알아두면 잘난 척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워낙 많이 인용되어, 영어사전에도 나올 정도.)
Odi et amo. quare id faciam, fortasse requiris?
nescio, sed fieri sentio et excrucior.
– 카툴루스, 시 85번
영어 번역 몇 가지.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보세요.
I hate and I love, Why do I, you ask ?
I don't know, but it's happening and it hurts
I hate and I love, you ask why I do this
I do not know, but I feel and I am tormented
I hate and I love, And if you ask me how
I do not know, I only feel it and I am torn in two.
I hate and I love, Why do I do this, you may ask?
I do not know, but I feel it and I am tortured.
I hate and love. And if you should ask how I do both,
I couldn't say; but I feel it , and it shivers me.
라틴어 동사들이 이렇게 댓구를 이루는 구조라니 번역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미워하고 사랑한다. 왜 이러는지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 그리 느껴질 뿐, 끔찍한 고통이다.
나는 미워하고 사랑한다. 어찌 그러냐고 묻겠지.
모르겠어. 나는 그리 느끼고 있고, 고통스러워.
* * *
카툴루스(Catullus, 서기전 84년~서기전 54년)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시인이다.
베로나의 괜찮은 집안에서 로마로 유학 온 청년 카툴루스는 로마 사교계를 드나들며 당시 로마의 문화에 푹 젖었다. 아무리 키케로 같은 사람들이 꾸짖어도, 근면과 절제가 미덕(특히 여성은 정숙함)이던 로마인들은 변해갈 수 밖에 없었다. 제국은 확장되고, 세상의 즐거움도 로마로 들어왔다. 연애가 흔한 일이 되었다. 거대한 사회적 전환기는 문학의 황금기가 되기 마련.
이 문학 청년은 사랑에 빠지고, 시를 쓴다. 레스비아(Lesbia)라는 여인을 향한 마음이 그의 시를 채웠다. 이십대의 나이에, 사랑의 황홀함에서 실연의 고통까지 절절하게 담은 시 백 여편을 쓴 이는 그전에는 없었다. (116편이 전해짐)
카툴루스의 시에 나오는 레스비아(Lesbia)는 클로디아라는 귀부인이라고들 추정하는데, 둘이 사귀긴 좀 사귄 듯하다만, 그 사랑은 카툴루스의 시에서만 남았다. 한쪽은 그냥 연애였고, 다른 한쪽은 순정이었고, 그랬던 걸까?
※ 클로디아 메텔리는 로마 유력 가문인 클라우디우스 집안의 딸이며, 메텔루스의 아내였다. (남편 메텔리우스가 독살된 뒤에는 인생을 공공연히 즐겼음) 키케로는 그녀를 ‘창녀’, ‘난교 파티 주최자’, ‘방탕’ 같은 말로 맹비난했다. 키케로가 클로디아의 남동생 클라우디스와 앙숙이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클로디아는 뒷방에서 얌전히 실을 잣는 여인은 아니었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외모, 유행을 주도하는 화제의 주인공, 흥청거리는 파티 주최자였고, 당시 로마의 엘리트들처럼 그리스어와 철학을 아는 ‘배운’ 여자였다. 그러나 야망있는 여성이 세상의 전면에 나설 수 없던 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녀에게 휘둘리다 떨어져 나간 남자들은 그녀를 팜므 파탈이나 창녀로 말하고 다녔다. 클로디아는 키케로에 의해 창녀로, 카툴루스에 의해 사랑의 대상으로 기록된 것. (카툴루스도 차인 뒤, 시 58번에서, 그녀가 교차로와 뒷골목에서 몸을 판다고 썼음. 물론 찌질한 비아냥이다.)
▲ Lesbia (1878), by John Reinhard Weguelin
어떤 대상에 내 마음을 담지 않았다면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겠지. 카툴루스는 사랑을 느끼는 나, 고통을 느끼는 나를 바로 바라본다. 그녀를 향한 감정은 생생하고(구체적이고) 직접적(노골적)이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같은 시인이 카툴루스 서정시의 뒤를 이었다.
* * *
카툴루스의 시에서 다음으로 유명한 문구는 시 5번의 “Let’s live and love”와 "천 번의 입맞춤".
2행에 나오는 ‘노인들의 말일랑 무시하자’는 말의 노인은 아마도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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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나의 레스비아야, 그리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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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Live and Love: to Lesbia
Let us live, my Lesbia, let us love,
and all the words of the old, and so moral,
may they be worth less than nothing to us!
Suns may set, and suns may rise again:
but when our brief light has set,
night is one long everlasting sleep.
Give me a thousand kisses, a hundred more,
another thousand, and another hundred,
and, when we’ve counted up the many thousands,
confuse them so as not to know them all,
so that no enemy may cast an evil eye,
by knowing that there were so many kisses.
- 카툴루스, 시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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