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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본 영화읽기

<비포 선라이즈>의 대사 한마디







다음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이 주고받는 대사다. 서로 뜬금 없이 주고받는 것 같은 이 대사가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같다. 그리고 철학의 일반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대사같기도 하다.


에단   "모든 행동은 사랑받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 관계유지를 위해 정력을 낭비하느니 뭔가 가치있는 일에 몰두하다 죽고싶어.. 감정이 두렵거나 사랑할 능력이 없는 건 아냐.."

줄리   "신이 있다면 너나 나 안엔 없어.. 우리 둘 사이의 공간에 있을 거야. 중요한 건 노력이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을 주는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바에야 사랑받기 위해 하는 여러 행동들은 얼마나 덧없을까.. 그리고 사랑을 받으면 또 뭐하나.. 사랑이란 구원이 아니라 상처이고 안식이 아니라 노동이란 말은 상처받기 쉬운 개개인들에게 어느 순간 아주 쉽게 와닿는 말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사회적 완성이라는 결혼이란 또 얼마나 상식적이고 평범한 것인가..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의 지루함..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생활에서 회의를 느끼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한 것에서 어떤 진정한 의미를 느낄 때가 많다. 위 영화의 대사에서 남자는 어떤 절대가치(신)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여자는 느닷없이 서로의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남녀 둘 사이의 '공간'에 신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서로가 소통하는 과정에서 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공간적 상상을 하게 한다.

사실 남자가 이야기하는 뭔가 가치있는 것(신, 절대가치)의 추구는 인간이라면 살아 생전에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 인간은 어떤 종착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사는 것일 뿐이다. 여자는 그걸 말하고 있다. 신영복님이 서양철학은 존재의 철학, 동양철학은 관계의 철학이라고 한 말과도 관련이 있는 대사인 것 같다.

추가.
[비포 선라이즈]의 감독은 [스쿨 오브 락]의 감독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걸작 [스쿨 오브 락]에는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영화배우 잭 블랙이 나온다.
잭 블랙은 2인조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는 락가수이기도 하다.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비포 선셋>도 놓치기 아까운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