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아닌 평일 밤에 혼자서 영화를 보기위해 외출을 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천백만 관객을 넘기고 서서히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 '변호인'이 2월 7일, 뉴욕을 포함한 미국 15개 도시에서 동시 개봉되었다. 큰 규모의 한인사회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LA나 뉴욕인근에서 성공한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또 인터넷 미디어가 구축한 대체 경로도 무한하기 때문에 한국 영화를 접하는데 '외국'이라는 공간적 제약도 거의 사라진지 오래지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다린 영화였기 때문에 개봉 소식을 접하곤 곧바로 극장을 찾은 것이다.
지난 화요일, 우연인건지 나는 배심원 봉사 (Jury Duty) 통지를 받고 이틀간 지역 법원의 준배심원 대기실에서 지리한 시간을 보낸 참이었다. 어쩌면 '변호인'을 보러 가라고 하늘이 점지해 준 날인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 같으면 발목을 잡았을 야근도 없고 내일 업무에대한 부담도 없는 날이 아닌가. 그럼에도 밤 늦은 시간에 약속도 없이 집을 나선 다는 것은 부담스런 일이었고 무엇보다 극장에 혼자 뻘줌히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은근슬쩍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눈물이라도 주책맞게 나오면 어떻하나... 혹시라도 그런 상황을 대비해 티슈를 두툼히 챙기고 얼굴을 충분히 가려주는 큼지막한 스카프를 칭칭 둘러 맸다.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언뜻 한산한 극장 로비에 들어서니 옹기종기 서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국사람이다. 티켓창구를 찾아 줄을 섰는데 앞 선 두 사람도 나처럼 혼자 온 관객인가 보다. 하나는 여자, 바로 앞선 이는 남자였는데 둘 다 나처럼 스카프를 매고 모자를 푹 눌러 쓴 모습에 웬지 안심이 된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한인이 적지 않지만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아서 7,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키워드로를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관객이 꽤 많다. 물론 평일 밤 9시에 미국이라는 시간, 공간적 제약 때문에 '천만' 영화의 위엄을 느낄만한 북적거림은 아니었지만 대충 훑으니 한 150여명 정도 되는 듯 하다.
삼, 사십대 관객들과 간간히 오십줄로 보이는 분들 사이로 생각보다 많은 20대 청년들이 눈에 뜨인다. 이 시간에 그 흔한 꽃미남, 꽃미녀 스타 하나 안 나오고 30년 케케묵은 '민주화'니 '인권'이니 하는 영화를 보러 오는 얘네들은 뭘까? 하고 호기심이 생긴다. 재밌다고 하니까? 천만 영화니까? 아님 미국에서 상영하는 몇 안되는 한국영화니까?
내가 이 영화를 찾아 올 수 밖에 없었던건 누가 뭐라해도 노무현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제작자도 감독도, 혹은 영화에 대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 조차도 '노무현'이라고 쉽게 말하거나 쓰지 않는 이 영화(참내, 무슨 해리포터도 아니고)는 결국 노무현을 상기시키는 모든 에피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 속 필연적인 과장과 편집도 가끔은 마음에 거슬렸다. 그렇지만 너무 빨리 추억이 되어버린 한 사람과 그를 잃고 여전히 시린 마음이 조금쯤 위로를 얻는다. 그를 만나고 돌아 오는 길, 달무리가 애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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