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폭설이 새 뉴욕시장을 곤란하게 만들다

반항아 2014. 1. 24. 04:58


뉴욕의 겨울, 폭설은 늘 잊지 않고 찾아 오는 손님이다. 매해 몇 번씩 찾아 오는 손님이다 보니 이 달갑쟎은 손님을 맞는 시 당국의 준비도 만만찮아서 소금과 모래를 두는 곳간은 늘 넘치도록 채워져야 하고, 제설차와 제설인원도 시 예산에서 늘 넉넉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호들갑스럽게 비칠지 모르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는 태풍이나 폭설 예고가 나오면 일주일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느라 관련된 시 부처들이비상사태로 돌입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 호들갑 덕분인지 큰 비나 눈이 와도 도시는 당황하지 않고 상황에 대처함은 물론이요 비교적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 간다. 지난 2012년 이던가? 우연히 한국에서 맞았던 100년만에 폭설을 경험하곤 뉴욕이 '눈'에 관한 한 얼마나 준비을 철저히 하는 지, 또 사후처리를 얼마나 훌륭히 하는 지에 대해 새삼 느끼기도 했었다. 

어제는 올 들어 두 번째 폭설이 뉴욕을 덮쳤다. 아침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세찬 바람 그리고 섭씨 영하 15도을 밑도는 기온과 맞물려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을 예고했다. 몇년 만에 눈보라 속을 헤매게 된 나 자신이나 이웃들에게도 힘든 하루였지만 얼마 전 임기를 시작한 새 뉴욕 시장 빌 드블라지오 (Bill de Blasio)에겐 이 번 폭설이, 눈보다 무서운 눈총을 치우는데 기력을 소진한 재해가 되고 말았다.  

예상보다 일찍 시작된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하자 맨하탄 통근자들 대부분이 귀가를 서둘렀고 이미 쌓일만큼 쌓인 눈과 뒤엉켜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확보해둔 제설차가 미처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고 도시는 눈보라속의 주자창으로 순식간에 변한 것이다. 정체 상황에서 제설차가 무슨 소용이랴? 눈 밭에 구르고 미끄러진 차들로 아우성이 된 시내 도로는 동서남북 할 것없이 개미 한마리 옴짝 달싹 못할 지경이 되었다. 퀸즈 지역으로 빠지는 다리에선 기다리다 못한 시민들이 차를 버리고 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날씨가 급하게 변덕을 부린게 새로 부임한 시장의 잘못은 아니라해도 눈보라 속에 몇 시간씩 헤맨 후에야 귀가할 수 있었던 시민들이 머릿 꼭대기까지 뿔이 났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기름을 부운 격으로 전 날밤, 사태를 낙관적으로 예상한 드블라지오시장이 시내 학교에 등교령을 유지하게 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시 위급상황인데 학생들에겐 등교조치를 내렸으니 (학교가다 쓰러져 죽어도 '개근'은 해야 했던 우리 세대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건 미국적 생활방식이나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용감한 조치였음을 밝혀 두지 않을 수 없다) 학부형들의 불만도 하늘을 찔렀다. 뉴스에 보니 어제 뉴욕시 출석률이 40%에 불과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좀 엉뚱한 지점에서 일이 터졌다. 뉴욕 시내가 온통 난리법석을 치르고 있던 때, 유독 제설작업을 열심히 해 깨끗히 유지된 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드블라지오 시장의 사저가 있는 브룩클린 파크 슬로프 타운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가장 늦게서야 이루어진 제설작업으로 다음 날까지 난리통이 된 지역은 어퍼 이스트라고 불리는 맨하탄 북동부. 바로 요기, 어퍼 이스트는 잘 나가는 금융계 인사나  법률가들이 몰려 사는 전통적인 부촌인데다, 직전 시장인 블룸버그가 사는 곳이다.

뉴욕이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시는 20년 동안 공화당계 (블룸버그는 비록 공화당을 중도에 탈당했지만 블룸버그의 지지층이 공화당적 색깔이 강함)가 시장직을 맡아 오다가 올 해 민주당 드블라지오로 교체되었고 그의 진보적 성향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호사가들은 어퍼 이스트가 이 번 폭설에 특별히 소홀한 대접을 받은 것은 '보수'에 대한 복수라며 뒷말을 하기 시작했고 취임 후 줄곧 '공정한 자원 분배'를 얘기했던 드블라지오가 '공정'에 힘쓰느라 '효율'을 해치는 미숙한 재해 처리능력을 보였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시장은 곧바로 반박하면서 그의 팀 모두 최선을 다해 폭설과 싸우고 있으며, 악조건에서도 잘 처리하고 있다는 자평을 내 놓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이번 폭설은 과거와 비교해 그다지 과한 것은 아니었다. 재해 관리팀이 새로 부임한 시장과 함께 모조리 바뀐 것도 아닐텐데 급작스럽게 아둔하고 느려터진 관리능력을 보인 것은 그 팀을 이끄는 사령부가 가진 문제점이었으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자고로 작은 것에 인심을 잃은 사람은 큰 일을 도모할 때 힘을 보태 줄 도움을 찾기 힘든 법이다. 드블라지오 시장은 그가 약속한 큰 그림들을 그리기 위해서 그물의 촘촘한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