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본 영화읽기

<와호장룡> 욕망에 관한 영화

노유주 2015. 11. 16. 02:05

<와호장룡> 욕망에 관한 영화




파란여우 (?)


이 여자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운동가이다.
이 여자를 외모부터 혐오감을 풍기게 설정한 것은 이 여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기존 가부장체제의 반항자 파란여우는 가부장제에 대항해 한 치의 타협과 동정의 여지없이 수단과 방법, 대상을 가리지 않고 싸운다. 가부장제 권력자인 주윤발과 싸우는 것은 물론 심지어 경제적, 권력적 약자인 몰락한 낭인을 죽이기도 하여 같은 여자인 낭인 딸의 원한까지 산다. 파란여우는 남자하고만 싸우며 남자는 무조건 적인 것이다. 이런 극단주의자에겐 적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 파란여우는 대부분의 관객들도 다 혐오하는 캐릭터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라도 혼자 살 순 없다. 파란여우는 가부장제에 의한 가족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기 위해 용에게 집착한다. (현대에도 많이 나타나는 대안가족의 형태이다. 파란여우는 단지 용의 무술스승이 아니라 용의 머리를 빗겨주는 유모의 역할을 하면서 유사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파란여우는 결국 용에게 배신당한다. 파란여우는 죽으면서 용을 저주한다.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악이 있었다”

그 악이란 바로 여성의 성적 욕망이다. 극단적 페미니스트의 최대의 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남자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성적 욕망인 것이다. 파란여우는 용을 동굴로 데려와 미향(물론 성적인 은유다)에 중독 시키고 용을 달래보려 애썼지만 여성의 성적 욕망이란 것이 그 정도로 쉽게 충족될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파란여우는 곤조 있는 극단주의자답게 리무바이를 죽이고서야 자신도 죽는다.

수련 (양자경)

극단적으로 가부장제에 찌든 여성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리무바이를 받든다. 리무바이가 죽는 순간 리무바이가 양자경을 사랑한다고 말하자 수련은 그런 말 할 기운으로 해탈하시라고 리무바이에게 극단의 충성을 보여준다. 수련은 철저한 희생과 봉사의 여성상이고 가부장의 입장에서는 위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상적인 가정부 여성상이다.
수련은 오로지 여자하고만 싸운다. 수련에게 있어 적은 오로지 젊은 여성의 무분별한 성적 욕망인 것이다. 물론 수련에게도 막연하나마 성적 욕망은 있다. 하지만 가부장제 소속 가정부 여자의 성적 욕망은 오랜 시간 동안 억압되고 숨겨져 왔던 것이라 질투를 통해서만이 그 왜곡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리무바이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리무바이에게 입 맞추며 힘겹게 그 내면의 모습을 드러낸다.
수련은 자신에게 기대러 온 용에게 온갖 잔소리로 야단을 치고 삐져서 떠나려는 용에게 청명검을 놓고 가라고 협박한다. 용은 당연히 수련의 명령을 거부하고 청명검을 뺏기지 않기 위해 수련과 싸운다. 여성끼리의 자매애의 적 역시 남성에 기댄 여성 자신들의 성적 욕망이다. 좀 단순히 말하자면 두 여자는 한 남자를 놓고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의 양상을 흥미롭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수련은 매우 많은 종류의 무기를 사용한다. 가부장제 기득권에 소속된 여성이 실제 사회에서 쓸 수 있는 무기가 다양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용은 단 한 가지 무기로만 싸운다. 오직 여성의 성적욕망, 성적매력을 상징하는 청명검으로만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청명검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
결국 둘의 대결은 객관적으로는 수련의 승리로 귀결되기는 한다. 하지만 용이 기어코 수련의 팔에 상처를 입히고서야 싸움이 일단락된다. 그리고 둘의 싸움의 대단원은 리무바이가 마무리한다. 리무바이가 나타나자 용은 그 장소에서 싸워도 되는데 굳이 리무바이를 대나무 숲 침실로 유인한다. 대나무 숲에서의 둘의 대결을 잘 보라. 사선 평면 앵글로 둘의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잡은 카메라 워크를 보면 둘은 싸우는 게 아니라 섹스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싸움이 끝난 후에도 동굴까지 용을 찾아가는 리무바이를 몰래 지켜보며 수련은 질투의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리무바이 (주윤발)

리무바이는 어딜 가나 항상 분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청명검을 안전한 권력기관(사회제도)에 맡기려고 한다. 권력을 가진 남자는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사회질서의 틀에 깊숙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그 속성이다. 그러나 욕망이란 숨기려 한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튀어 나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아리따운 용은 청명검을 훔침으로써 그 욕망을 기어이 끄집어낸다.
그럼 왜 리무바이는 용을 즉각 응징하지 않는가. 욕망을 숨기고 싶으면서도 막상 그 유혹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남자의 속성이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유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런 일탈을 조장하고 묵인하는 것이 바로 기존 가부장제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수련의 태클에도 불구하고 리무바이는 용과 청명검을 끈질기게 쫒아 다닌다. 그리고 대나무 숲 섹스 결투 후 리무바이는 청명검을 던져버린다. 일단 정복한 여자의 잔여 욕망의 씨앗을 없애려는 의도이다. 하지만 용은 당연히 청명검을 포기하지 않고 물속으로 청명검을 쫒아 달아난다. 리무바이는 기어이 동굴까지 쫒아가 미향에 중독된 용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용의 몸에 손을 댄다. 이 때 수련이 동굴로 들어오는데 이 장면은 외도를 하다 본부인에게 딱 걸리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태는 바로 가부장제 권위의 균열을 의미하고 그 파멸을 알리는 상징적인 신호탄이다.
리무바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욕망의 끝은 바로 죽음이다.

용 (장쯔이)

여성의 매력과 성적 욕망의 현신이다. 용은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 된다. 처음엔 빗만을 매개로 순진한 산적의 사랑을 온전히 얻을 수 있었고 잠시 만족하기도 했으나 곧 산적을 버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 청명검을 훔친다. 그리고 청명검으로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 가부장제의 정점에 있는 리무바이를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리무바이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욕망의 특질처럼 용은 끊임 없이 갈등한다. 지쳐 수련을 찾아갔다가도 수련이 자신의 성적욕망을 억압하려하자 반발하고 리무바이에게 "청명검을 뺏으면 당신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다가 막상 뺏기고 나자 또 말을 바꾼다. 그리고 또 동굴에서는 리무바이를 물에 젖은 얇은 옷으로 유혹한다. 그런데 막상 그 불륜의 현장을 수련에게 들키자 용은 그 때부터 수련에게 고분고분해진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용에게 있어서도 파멸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용은 리무바이가 죽고서야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게 된다. 처음엔 리무바이를 거부하다가 나중엔 리무바이를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말을 달리던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도 용납 못할 모순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욕망이라는 것은 쉽게 다운 그레이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용은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청명검을 수련에게 순순히 반납한다. 욕망이 없으면 살 가치가 없는 것이 용의 운명이다. 용은 바로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용은 옛 애인과 다시 만나 같이 하룻 밤을 보내지만 허무함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용은 옛 애인에게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大自然에 몸을 던진다.
모든 걸 흔들어 놓았던 용 자신의 꿈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욕망은 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뜻인가, 꿈은 이루어지는데 욕망은 이룰 수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욕망이 꿈이란 말인가. 물론 다 비슷한 말이긴 하다.


사족.

<와호장룡>은 “누운 호랑이와 숨어있는 용”이란 뜻인데 호랑이는 현실을 의미하고 용은 꿈을 의미한다. 현실이 꿈을 따라잡을 수 없듯이 호랑이는 용을 이길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사 싸운다 하더라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욕망과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기본. 201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