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장 참사를 보고
예비군 한 명이 사격훈련 시간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총을 난사하여 예비군 4명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자살했다. 나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받은 적이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강남 지역이라 그런지 당시 훈련장에서 안정훈, 강원래 등 연예인들을 몇 명 봤는데 누구 누굴 봤는지 지금은 다 기억이 안 난다.
내가 그 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가수 강원래 때문이다.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불구가 되었던 날이 바로 그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고 예비군 훈련장을 빠져 나가는 것도 봤는데, 몇 시간 후 사고가 났다.
당시 사격 훈련도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예비군 훈련장 분위기는 형식적이고 느슨한 편이었다. 당시 사격 조교는 우리에게 굳이 총 쏘기 싫은 사람은 쏘지 말라고 했다. 괜히 억지로 쏘다가 쓸 데없는 사고라도 날까 그랬겠지. 난 군대에서 지긋지긋하게 총을 쏴봤기 때문에, 또 특유의 화약냄새가 싫어서, 무엇보다도 귀찮아서 사격훈련에 참가 안 하고 그냥 지켜봤다. 나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전체 1/3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총 한 번 쏘겠다는 예비군들이 더 많았다.
내서니얼 호손은 "인간 천성의 여러 경향 중에서, 남에게 해를 끼칠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하게 구는 경향만큼 추악한 것은 별로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호손의 언급 관련 최악의 경우, 순수한 의미에서 극단적인 사례 같다. 하지만 살인이 아니더라고 우리는 매일매일 뉴스에서 별 이유없는 잔혹행위를 늘 보고 산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보면 이런 사건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느긋하다면, 좀 덜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by 이기본. 2015.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