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본 영화읽기

<위대한 백인의 희망> 위대한 흑인 복서 잭 존슨

노유주 2015. 10. 26. 18:28

<위대한 백인의 희망> 위대한 흑인 복서 잭 존슨

 


위대한 백인의 희망 (The Great White Hope, 1970)

감독: 마틴 리트

주연: 제임스 얼 존스, 제인 알렉산더

 

어릴 때 TV에서 봤던 이 영화는 그 이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내 머리에 깊이 남아있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하워드 새클러(Howard Sackler)의 희곡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흑인 헤비급 챔피언 잭 존슨(Jack Johnson)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제퍼슨은 실력 있는 권투 선수지만 흑인이기 때문에 시합에 이기면서도 백인 관중들의 야유를 받는다. 백인 선수에게 KO 시켜 우승을 따낸 제퍼슨은 자신의 카페에서 축하 파티를 벌이고 많은 흑인들 앞에서 백인 이혼녀인 엘리노이를 약혼녀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흑인인 제퍼슨이 챔피언이 된데다 카페를 경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연방 보안관은 애인인 엘리노이를 불러 취조를 한다. 보안관은 제퍼슨이 엘리노이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적은 없었는지 꼬치꼬치 캐묻지만 엘리노이는 사람들이 자신과 흑인 권투 선수와의 사랑을 순수하게 보지 않자 상심한다. 제퍼슨은 엘리노이와 한적한 곳에서 만의 시간을 갖으며 사랑을 속삭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연방 경찰들에게 납치범으로 체포된다. 제퍼슨은 누명을 친구들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도망간다. 영국에서도 미국의 범법자는 환영받지 못하자 성격이 점점 거칠어지고 엘리노이와도 말다툼을 일으키며 매니너까지 해고한다. 방황하던 제퍼슨은 어머니가 위급하단 소식을 외면한 멕시코로 간다. 멕시코에 정착한 제퍼슨은 백인 선수에게 경기를 져주면 잡아가지 않겠다는 연방 보안관의 협박을 받고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우월감을 살려준다. 그러나 엘리노이가 정정당당히 싸우라고 충고하자 그녀를 때리고 떠나라고 한다. 한편 연방 보안관이 찾아와 사바나에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하라는 명령에 거절하던 제퍼슨은 우물에 빠져 자살한 엘리노이를 보자 출전하기로 결심한다. (네이버 )


 

그리고 주간조선에 실린 잭 존슨의 실제 이야기.

영화에서도 실화에서도 잭 존슨은 알리처럼 경기중 상대방을 조롱하는 등 말이 많은 독설가였다.

 

 1908 12 26 | 잭 존슨, 흑인 최초로 세계 헤비급챔피언에 등극

 

1904, 승승장구하던 잭 존슨이 세계 헤비급챔피언 제임스 제프리스에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챔피언이 “흑인과 경기할 수 없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존슨은 3년 후 제프리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던 전() 챔피언을 링 위에 쓰러뜨려 간접 분풀이를 했다.

 

제프리스가 은퇴하고 캐나다 출신의 토미 번스가 새 챔피언이 되자 존슨은 다시 번스에게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번스 역시 대결을 차일피일 미루며 호주로 꽁무니를 빼자 존슨은 그곳까지 쫓아가 경기를 성사시켰다. 1908 12 26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는 예상대로 일방적이었다. 14회에 접어들었을 때, 자칫 번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경찰이 경기를 중단시킴으로써 존슨은 흑인 최초의 세계 헤비급챔피언이 됐다.

 

흑인 챔피언을 인정할 수 없었던 백인들은 존슨을 쓰러뜨릴 ‘위대한 백인의 희망(The Great White Hope)’을 찾았고, () 챔피언 제프리스가 희망으로 떠올랐다. 1910, 결국 존슨과 제프리스가 맞붙었다. 백인들은 곧 고꾸라질 존슨을 상상하며 열광했고 언론은 ‘세기의 대결’이라고 흥을 돋우었다. 존슨은 백인들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기죽지 않고 입으로는 상대를 조롱하며 주먹으로는 상대를 난타했다. 결국 제프리스가 15회에 경기를 포기하자 흥분한 백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으로 흑인 9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

 

이후 7년 동안 존슨은 절대강자였다. 그러나 1912년 존슨이 백인여성과 결혼하는 바람에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화를 불렀다. 엉터리 법 적용으로 1년형을 선고한 것이다. 부부는 달아났다. 존슨은 해외를 떠돌다 1915년 쿠바 하바나에서 챔피언으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어느덧 37세가 된 존슨은 신예 복서 제스 윌라드와 45회 경기를 가졌으나 결국 26회에 KO패했다. 이때 존슨이 스스로 경기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백인의 화를 누그러뜨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죄를 감해볼 생각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1920년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그를 기다린 것은 1년간의 감옥살이였다.

 

이 영화가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흑인 권투선수와 백인여자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서 파국에 이르는 두사람의 마지막 처절한 싸움. (1991년에 인종문제에 집중해 온 스파이크 리 감독이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 <정글 피버>를 만들어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난 <위대한 백인의 희망> 때문에 면역을 겪어선지 별로 새롭진 않았다.)

 

<위대한 백인의 희망>은 어릴 때 딱 한 번 봤기 때문에 이 영화의 장면들이 파편적으로 기억이 난다.

 

-제퍼슨이 프랑스로 쫒겨가서 싸구려 시합을 하며 지내는데 어느 날 새벽 제퍼슨은 엘리노이와 새벽의 텅 빈 지하철 보도를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제퍼슨은 마치 고릴라처럼 자신의 가슴을 치며 투지를 불태우고, 엘리노이는 제퍼슨의 유일한 동반자로 그런 제퍼슨의 모습을 뒤 따라오며 지켜보던 모습.

 

-제퍼슨이 경찰의 감시를 피해 움직일 때 '블루 제이스'라는 프로야구팀의 유니폼을 입고 블루 제이스 선수들에게 둘러쌓여 경찰을 따돌리던 장면.

 

-제퍼슨이 엘리노이와 말다툼, 그리고 엘리노이의 자살.


 

제퍼슨이 백인의 협박에 굴복하려 하자 엘리노이는 제퍼슨에게 정정당당히 싸우라고 충고하는데 제퍼슨의 방향을 잃은 분노가 엘리노이를 향해 폭발한다. 제퍼슨은 엘리노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모욕을 주고 때린다. 계속 몰아치는 제퍼슨에게 울며 애원하던 엘리노이는 어느 순간 격앙된 말다툼을 순식간에 딱 멈추고 아주 조용히, 나즈막히 한마디 한다. "당신이 이겼어요" 그리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제퍼슨은 엘리노이의 죽음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하며 곧 울면서 후회하고...

 

과거 세상의 눈총은 받았지만 그래도 둘을 버티게 했던 둘만의 사랑, 둘만의 자존심, 자부심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특히 이 장면이 슬펐던 건 이전엔 흐트러진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단아했던 엘리노이의 눈물 범벅된 얼굴과 헝컬어진 머리결 때문이었던 것 같다그리고 제퍼슨에게 애원하다가 모든 걸 포기하고 순간적으로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살한 제인 알렉산더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연기.


(by 이기본. 2015.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