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본 칼럼

동아시아가 진화론을 받아들였을 때

노유주 2015. 10. 23. 21:56

동아시아가 진화론을 받아들였을 때


엄복(严复옌푸,1854년 ~ 1921년)


19세기 말 20세기 초 중국 학자 엄복(严复옌푸,1854년 ~ 1921년)은 서양의 책들을 많이 번역했다. 서양 근대사상이 동양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계기였다. 엄복의 번역서들에는 애덤스의 국부론, 스토우 부인의 엉클 톰의 오두막,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뒤마의 춘희, 스콧의  아이반호 등이 있다. 그중 특히 중요한 번역서가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다. (번역서 이름은 《천연론天演論》이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영향으로 당시 전세계 정치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 부유층들은 자신들의 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론을 적극 이용했다. 다윈의 사촌 골턴은 다윈의 영향으로 우생학을 새로 주창했고 나중에 히틀러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사회진화론은 중국, 일본, 한국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사회진화론 주장의 핵심 중 하나가 '근대 개인주의'인데 중국에선 이 개인주의가 무정부주의, 더 나아가 볼세비즘의 바탕이 됐다. 일본은 당시 천황제가 다시 확립되면서 집단주의로 변질됐다. 한국에선 결정적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이 한일합방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한 계기 중의 하나가 됐다.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 조선에선 국가 차원의 사상 투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대체로 국제정세 관련 정보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편전쟁의 결과를 놓고 네덜란드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청나라의 열악함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결국 일본은 청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했고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조선을 차지했다. 일본이 미국에 순순히 개항했던 것도 일찍이 '중국보다 서양'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청나라의 관제 보고만 믿고 아편전쟁의 결과를 '개방을 조금 확대한' 정도로만 생각했다.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정도가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by 이기본. 20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