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본 칼럼

[18세기] 18세기 전후 영국사 개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14. 23:56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근대국가는 독재 권력을 견제하는 의회의 안착을 그 필수조건으로 한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을 이뤘다. 영국 혁명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극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다소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명예혁명은 근대 세계사를 이끌었던 가장 중요하고 큰 축이었다.

 

영국의 마지막 카톨릭 성향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제임스 2세(재위 1685~1688)는 어렵게 즉위한 뒤 영국 국민들에게 전제 지배와 카톨릭을 강요했다. 이에 의회는 왕의 맏딸 메리와 그녀의 남편인 네덜란드의 오란여 공 빌럼(윌리암 3세)을 국왕으로 추대했다. 제임스 2세는 카톨릭 국가 프랑스로 망명했고, 윌리엄 3세(재위 1689~1702)와 메리 2세(재위 1689~1694)는 영국의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다. 새 국왕 부부는 의회가 기초한 ‘권리장전’을 승인했고 이것은 왕권에 대한 의회 권력의 완전한 승리였다.

 

네덜란드 통령을 겸한 윌리엄 3세는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로서 프랑스 패권을 꺽으려 노력했다. 그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위를 시도한 제임스 2세를 아일랜드에서 격파하고 그곳을 식민지로 삼았다. 메리 2세의 뒤를 이은 여동생 앤(재위 1702~1714)은 스페인 계승전쟁에서 프랑스·스페인과 싸우고 신대륙 식민지를 확대했다. 1707년에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합병하고 대영제국, 그레이트 브리튼으로 거듭났다.

 

앤 여왕의 뒤를 이은 조지 1세(재위 1714~1727, 제임스 1세의 증손자)는 양당제 의회정치 및 의회내각제를 차츰 정착시켰고, 그의 아들 조지 2세(재위 1727~1760)와 함께 휘그당의 전성기를 이뤘다. 1760년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조지 3세(재위 1760~1820)는 이전까지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휘그당을 싫어하여 1780년대까지 의회와 투쟁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서로 합의하며 적응했다.

 

유럽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패권시대를 경험했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 패권시대를 경험했다. 7년 전쟁(1756~1763)과 함께 영국 패권시대가 시작됐다. 영국은 해군력을 앞세워 ‘바다의 폭군’이 되었다. 이후 영국은 엄청난 경제 및 문화 발전을 이뤘다. 인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국제 무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