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과학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표도르 파블로비치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2. 22:42

 

 

 

살해당하는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행복은 정욕과 돈에 있다. 정욕은 그의 삶이며 돈은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이반은 표도르의 타락한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그 사상만은 옳았다"고 평가함으로써 카라마조프적인 삶의 태도란 무엇인지를 단순하게 정의한다. 

회의적 지성인 이반이 아버지의 유산을 확보하기 위해 살인을 교사했다는 설정을 통해,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의 삼남 중 "도련님(이반)이야말로 나리(표도르)를 닮았다"고 단언한다. 이반은 "독사가 다른 독사를 집어삼키게 두라지"라며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인대도 방관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실제 표도르를 죽인 독사는 바로 이반 자신이 된다.

르네 지라르라면 이반의 친부살해를 닮은꼴끼리의 첨예한 경쟁이 빚어낸 파국이라고 분석할 것이다. 그는 문명의 발전을 인간 간의 비교심리가 극단화되는 조건으로 보았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비슷한 부류들과 경쟁하고 서로를 질투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 비극적 결말이 자주 발생하는 장소가 가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가 토스토예프스키라는 것이다. 그때문에 초기 역사에서는 완벽한 닮은꼴이어서 증오의 상징이 된 쌍둥이 중 하나를 살해하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데는 무의식적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의식적 차원에서, 나는 이반과 돈의 관계에서 더욱 냉엄한 논리를 발견한다.

해럴드 블룸은 <보봐리부인(플로베르)>의 엠마를 정욕의 화신으로 묘사하면서 그녀를 파멸시키는 것은 정욕이 아니라 돈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표도르는 돈을 거머쥔 엠마이자 불안한 상상력을 거부하는 엠마다. 불안한 상상력이란 많은 사람들이 엠마의 원죄로 지적하는 허영심을 의미한다. 엠마에게 파멸을 막을 돈이 있었다면 그녀 역시 표도르와 같은 실용주의자이거나 돈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낭만적 히로인에 들었을지 모른다.

엠마는 남편의 경제력에 의지하고 있었기때문에 쁘띠 부르주아 또는 중산층 정도의 생활은 누릴 수 있었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은 돈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었고, 이것은 표도르의 특기였다. 엠마의 허영심은 자신에 대한 일종의 과대망상인데, 카라마조프적 인생에서는 욕망을 충족할 경제적 수단의 결핍과 대칭한다.

종(species)으로서의 의지를 알뜰하게 실천하는 표도르가 모범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확고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결코 허무에 빠지지 않는데, 인생의 유한함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대'라고 놀림받는 그의 기질에도 명민한 현실대응이 엿보인다. 그는 "평생동안 연기를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뭐든 전혀 뜻밖의 역할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무엇보다도 이따금씩은 아무 필요도 없이, 심지어 지금처럼 자신에게 곧바로 해가 되는 경우에도 그러했다"

​그의 희극은 고상하지 못해서 자신의 처지를 과장스레 한탄하면서 눈물을 쥐어짜기도 하고,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효과에 촛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표도르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놀려는 배우가 됨으로써 인생이라는 무대를 객관화하고 심각한 주제들을 희롱하면서 동물적 활기를 유지한다. "못생긴 여자는 없다"는 표도르의 말 역시 실용주의적 호색한 답다. 그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능력과 품위, 곧 아름다움이며 이는 세 아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