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드미트리의 약혼자인데 그에 대한 증오를 자양분으로 연인의 의무를 수행한다. 예전에 카체리나의 아버지가 돈 때문에 파멸 위기에 놓였을 때, 드미트리의 수청을 들고 돈을 받으려 했었다. 한량 드미트리가 변덕을 부려 카체리나에게 돈만 주고 순순히 돌려보내려 하자 그녀는 드미트리에게 엎드려 절하며 그녀가 그의 것임을 고백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연인이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녀는 그루첸카와 눈이 맞아 자신을 배신한 드미트리의 온갖 기행과 방탕을 헌신적으로 수습하려 한다.
이러한 인고는 드리트리 입장에서 가장 불리한 타이밍에 복수로 돌변한다. 그가 친부살해 누명을 쓰고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때, 그리고 변호인이 거의 무죄판결을 받아낼 것으로 보이던 시점에, 드미트리에게 결정적으로 해로운 증언을 쏟아낸 것이다. 그녀는 최초의 만남에서 수청을 받아들이려 했던 자신의 처지, 성 매수자의 자비 앞에 엎드려 절한 굴욕의 기반 위에서 헌신을 가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헌신은 상대를 파멸시킬 적절한 시기를 찾기 위해 지근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드미트리의 동생이면서 카체리나를 사랑하는 이반은 이것을 '허위 위의 허위'라고 말한다.
낭만주의자와 이상주의자로 가득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도 카체리나는 탐욕스런 라키친과 더불어 가장 현대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굴욕감을 정당한 분노의 형태로 표출하고 승인받을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찾으며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다. 카체리나가 드미트리의 자유를 숙주로 삼을 때, 그러한 월권을 편견의 힘으로 정당화 할 때(재판에 참석한 구경꾼과 배심원은 대체로 그녀를 동정한다) , 법정은 우리시대의 축소판이 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카라마조프가의 주인공들은 그녀의 허위를 잘 알고 있으며, 그녀 자신도 결국은 이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에 민감한 친구가 곁에 있을 때, 우리는 다시 고상한 어느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카체리나의 뒤늦은 자의식은 애정어린 진실들이 행사한 압력이고 결국 그녀는 드미트리에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 내 성격이 문제예요...(중략)...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연인들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내가 당신에게 그런 것처럼 당신도 나를 영원히 사랑해 주세요"
그녀가 드미트리를 사랑했느냐고? 사랑했지만, 자존심을 더 사랑했지. 드미트리는 법정에서 그를 사지로 몰아넣은 그 순간에도 카체리나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열렬히 응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