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실비아의 헌정판을 팔아먹은 테드 휴즈
평론가 출신의 책 수집가인 릭 게코스키Rick Gekoski는 '모든 책벌레들의 우상', '책 세계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불린다(고들 한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희귀 초판본 거래업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이색적인 인물이다. (그의 거래목록은 www.gekoski.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책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Tolkien’s Gown and Other Stories of Great Authors and Rare Books>(릭 게코스키, 르네상스, 2007)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중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가 자신에게 헌정한 시집을 팔아먹은 테드 휴즈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 <거상巨像 The Colossus and Other Poems>의 미국판 초판은 1962년에 발간됐다. 이 책에는 플라스의 남편에 대한 헌사가 씌어있다. "테드에게. 시 '거상'과 '오토왕자Prince Otto'의 기법(Craft and Art)은 당신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실비아가."
독일계 미국인 실비아는 아버지 오토를 여덟살 때 잃은 이후로 평생 아버지에게 집착했다. 실비아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녀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스무 살 때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실비아는 남편 테드 휴즈를 만난 이후 아버지와 테드를 '합치려고' 노력했다.
<거상>이 발간된 지 며칠 뒤 플라스 부부에게 데이빗 웨빌David Wevill과 아시아 웨빌Assia Wevill 부부가 방문했는데, 그들은 테드의 영국 집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테드와 아시아 사이에 공공연한 애정 관계가 생겼고 실비아는 질투심과 분노를 느꼈다. 이후 테드가 런던에 가 있는 사이, 실비아는 테드의 원고를 모두 불태웠다. 곧 테드가 집을 나갔고, 실비아는 시집 한 권을 더 쓰고 1963년 2월 11일에 자살했다. (6년 후에는 아시아가 자신과 테드 사이에서 낳은 딸 슈라와 함께 자살했다.)
<거상> 헌정판은 1962년 시장에 나왔다. 테드는 책을 숭배하고 책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의 자필 헌정판을 곧바로 팔려고 내놓다니.
소더비의 책 담당 부서장이던 로이 데이비스(테드 휴즈의 친구)는 릭 게코스키에게 <거상> 헌정판을 사라며 4천 파운드라는 가격을 제시했다. 릭은 곧바로 구입했고, 곧 9천 5백 파운드라는 가격을 붙여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로이는 릭에게 "테드가 펄펄 뛰고 있습니다. 거래업자란 10퍼센트만 붙여야 하는 게 아니냔 거죠, 테드는."이라고 말했다. 물론 별 의미없는 항의였다.
릭 게코스키는 테드를 까탈스런 사람으로 기억한다. 한번은 릭이 실비아 플라스가 빽빽하게 메모를 달아놓은 <위대한 개츠비>를 판매목록에 올렸는데, 테드가 "그 책은 도난당한 책"이라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릭은 그 책을 테드에게 반환했지만 결국 나중에 조사해본 결과 실비아의 <위대한 개츠비>는 실비아의 어머니가 판매한 것이었다. 테드는 할 수 없이 다시 릭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실비아의 <거상> 헌정판은 2003년 필라델피아의 어느 수집가에게 5천 파운드에 팔렸다. 릭은 오랜 세월을 버티다가 할 수 없이 조금의 이윤만 남기고 팔았던 것인데 곧 후회했다. 몇 년 후 그 책은 훨씬 높은 가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