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전복죽 끓이기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요리는 넘어야할 산이요 극복해야할 과제다. 부지런을 떨어 집밥을 먹자니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한 노동이기에는 너무 많은 노고와 시간이 필요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인스턴트로 식탁을 채우자니 사는 게 너무 보람없게 느껴진다. 미국생활 초기에는 (아마도 부족한 주머니 사정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어떻게든 따뜻한 집밥 한 그릇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는데 십여년이 흐른 지금 내 식탁엔 온전히 남의 노동을 빌린 먹거리들로 가득하다.
당분간 환자식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오랜 동안 차 끓이고 라면이나 끓이던 부엌에서 법석대고 요리를 해본다. 오늘의 도전 요리는 전복죽!
살아있는 넘들을 사왔더니 지들끼리 어부바하고 있다
근처 한인마트에서 전복 8마리를 사다가 쏟아 놓으니 지들끼리 마구 엉켜있다. 나름 살아있다는 표현인데...너희들 지금부터 먼 길을 떠날 거야~ 먼저 굵은 소금을 뿌려 전복을 깨끗이 씻어 놓는다.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것은 솔로 박박 문지르면서 씻어낸다. 아마도 이 과정이 가장 힘든 과정이 아닐까 싶다.
1차 샤워를 마친 전복들. 굵은 소금을 뿌려 솔로 손질하면 된다는데 나는 굵은 소금이 없어서 일반소금을 못쓰는 칫솔에 묻혀 세수시켰다
이 정도 씻어 낸 다음 전복을 껍질로 부터 분리 손질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도저히 사진까지 찍을 여유가 없어서 생략했다. 방법은 패가 왼쪽 손바닥위에 닿도록 올려 놓고 오른손으로 밥숫갈을 이용해 패와 관자을 분리하는 것. 벌어진 틈새로 숫가락을 밀어 넣으면 딱딱하게 닿는 것이 있는데 이게 바로 관자. '따각'하는 느낌과 함게 비교적 쉽게 떨어진다.
관자와 몸통에 딸려 오는 물컹거리는 밤색 물질은 전복 내장인데 요것들이 진정한 전복죽 맛을 내는 것들이라고. 버리지 말고 따로 떼내 둔다.
전복 손질의 하이라이트는 전복의 입을 제거하는 일. 위 전복 사진중 맨 왼쪽에 있는 놈을 봐라. 아래쪽에 패가 오목 들어간 곳이 보이나? 요기가 바로 입이 있는 부분으로 숨어있는 날카로운 이빨까지 찾아서 칼로 제거하면 된다.
마지막 손질까지 마친 아이들
손질한 전복은 취향에 따라 썰거나 갈거나 하면 되는데 나는 환자식으로 만들다 보니 내장과 숭덩숭덩 썰은 전복을 믹서에 갈았다. 오래전에 광화문 근처 유명한 죽집에서 전복죽을 시켰는데 눈을 씻고 찾아도 전복이 안보이더라. 살짝 화도 나고 주인 아저씨한테 '아저씨 전복은 다 어디 숨었어요?' 물었더니 '아~전복을 갈아 넣어 그래요'했었는데. 전복을 갈아 넣어도 잘만 찾아진다는 걸 오늘에야 알었다.
전복이 녹두색으로 변한 건 모두 내장탓
큰 냄비에 참기름 휘릭 두르고 갈아 놓은 (썰어 놓은) 전복을 넣고 살짝 볶는다. 이 때 간이 되게 소금도 약간 뿌려줘도 된다. 전복 자체가 소금기를 갖고 있으니 소금은 절대 많이 쓰지 마시길.
적당히 볶다가 불려 놓은 쌀을 함께 넣고 살짝 볶고
물을 넉넉히 둔뒤 약한 불에 올려 느긋하게 기다린다. 쌀이 눌러 붙지 않게 가끔씩 저어주고 물도 보태 주는 건 요리사의 센스!!
전복죽과 같이 올린 건 모듬야채피클.
이것도 올 겨울에 배운 건에 만들기 대박 쉽다. 올 겨울 김치대신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
쨔잔~~ 드디어 전복죽 완성. 취향에 따라 검은깨나 김가루를 솔솔 뿌려도 좋을 듯.
한 컷에 안 잡혀서 따로 찍은 김치 3종. 전복을 사러 갔더니 전라남도 특선전이 열리고 있어서 김치를 3 가지나 충동구매 하고 말었다. 왼쪽부터 도라지, 갗, 파김치. 보기만해도 행복해 지는 자태가 아니냐? 당분간 달아난 입맛을 찾아 줄 고마운 녀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