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본 칼럼

길 고양이 (본의 아니게) 길 들이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21. 20:31



일산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이사 온 지 한 달 쯤 되던 날, 같은 동네에 사는 작가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리고 집 마당을 보더니 나에게 "길 고양이들이 의외로 물을 잘 먹지 못 한다"며 나에게 마당에 물을 떠 놓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난 별 생각 없이 마당에 물을 떠 놓았다. 그간 날씨가 추워 물이 곧잘 얼었기 때문에 매일 물을 갈아줬다. 


며칠 후 이것저것 쇼핑을 하기 위해 코스트코에 갔다. 그러다 고양이 먹이용 캔 박스가 내 눈에 띄어 한 박스 샀다. 그리고 매일 물 그릇 옆에 매일 캔 하나씩을 따서 넣어뒀다. 이후 내가 집을 들락거릴 때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황색 고양이가 이따금 눈에 띄었다.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하던 사람들 중 몇 사람이 고양이가 마당에서 뭘 먹고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황색 고양이를 골고루 목격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낮, 내가 캔 하나를 따서 그릇에 넣어 두는데, 내 바로 옆에 황색 고양이가 와 있었다. 난 소리도 없이 내 옆에 있던 고양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난 그간 캔만 넣어두고 곧 자리를 떴기 때문에 그 고양이는 나에 대해 별 경계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난 고양이가 참 대범하다 생각해서 이름을 '대범이'라고 붙여주었다. 





그 이후로는 우리집 마당에서 다른 색깔의 고양이는 볼 수 없었다. 대범이가 다른 고양이들을 모두 쫒아내고 우리집 마당을 자신의 구역으로 독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정의의 법칙보다 자연의 법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 대범이의 독점행위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초기 기득권 창설 행위로 받아들였다. 또 대범이가 '흑인종과 백인종을 물리친 황인종'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 올랐을 때, 내 마음 속의 인종주의가 스윽 드러난 것 같아 스스로 뜨끔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제 대범이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경계심은 완전히 없어져서 얼굴에 카메라를 갖다 대어도 개의치 않고 아침, 저녁으로 출입문 근처에서 날 기다린다. 또 대범이는 오늘 같이 따뜻한 날엔 먹는 것과 상관 없이 집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내가 외출할 때마다 내 옆에 와서 야옹 거릴 때 난 마음이 약해 하루에 4번이나 캔을 뜯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부터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딱 두번만 규칙적으로 캔을 주기로 결심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어느 추운 날 밤, 대범이는 내가 캔을 뜯어줬는데도 먹이 있는 곳에 가지 않고 내 곁을 서성였다. 내가 캔을 따 주고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먹이 쪽으로 가지 않고 내 눈치를 보며 집 안을 기웃거렸다. 집 안으로 들어 오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쌍했지만 길 고양이를 안으로 들일 순 없었다. 나에겐 동거인도 있고 또 길 고양이를 목욕시킬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당분간 큰 의미에서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