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고요한 카메라 워킹, 이미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 작품을 이루는 멋진 구도와 색감의 그림같은 장면 장면들, 정지된 사진 속으로 사람들과 기차가 걸어 들어간 듯한 영상, 잔잔하나 인상적인 음악.
살아온 세월이 켜켜이 스며들어 물때 낀 커피포트, 성냥으로 불을 붙이는 파이프 담배, 어둡고 기다란 터널, 그 터널의 끝에서 펼쳐지는 순백의 설원.
이 모든 게 너무 아름답다.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면 대략 70세 전후 정도 될 것 같다. '지루할 것 같은데?'라는 선입견은 버려도 좋다. 내 자신있게 보증하니라.
벤트 하머는 <오슬로의 이상한 밤> 이전에 <에그스(1995)>, <키친 스토리(2003)>, <삶의 가장자리(2005)>를 쓰고 만든 영화감독이자 불불 필름의 대표다. <오슬로의 이상한 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음악은 존 에릭 카에다의 작품이다.
주인공 오드 호텐은 40년 동안 기관사로 일해 왔다. 그의 퇴임식에 함께 한 동료들 속에서 오드는 조용히 미소를 짓기만 한다. 퇴임식이 끝난 후, 녹음된 기적소리만 듣고 몇 년도에 운행된 무슨 기차인지, 기차 구간에 다리는 361개인지 362개인지 실랑이를 벌이며 알아맞히는 게임을 즐기는 기관사들의 반짝거리는 눈은, 부어라 마셔라 오늘 다 죽어보자 술을 퍼붓는 우리네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단골인 동네 레스토랑 'Valkyrien'의 웨이터도 오드 연배의 할아버지다. 조금 더 젊거나 비슷한 연배의 손님들은 오늘도 같은 자리에 앉아 먹던 술과 음식을 주문한다. 일상을 깨는 돌발 상황에도 놀라지 않는다. 조용히 눈빛만 주고 받을 뿐. 말을 섞진 않으나 서로에 대한 짙은 신뢰가 배어나는 식당이다. 참 편안하다. 내가 마치 그 레스토랑의 단골 손님이기라도 한 듯이 그 평온하면서도 내밀한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담배 가게 'Sol Cigar Co' 또한 오드의 단골 가게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반겨주던 남자는 지난 주에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지만 눈물을 흘리거나 애통해 하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죽음도 삶의 일부니까요."라고 말하는 여자는 그 담배 가게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 말해준다. 관계도 이어질 것이다.
멈추고, 끝나고,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계속된다, 여행도, 관계도, 삶도.
멈춰 있다고 해서 여행의 종착지에 다다른 건 아니다. 사라졌다고 해서 관계가 끝난 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죽은 것 또한 아니다.
철로가 끝난 곳에선 두 발로 걸으면 되고, 형체는 사라졌으나 관계 속에서 살 것이며, 두려워서 못했다면 이제라도 하면 된다. 무엇을 위한 두려움이던가.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 나의 무엇이 지켜지던가.
영화는 조용히, 웃고, 깨닫게 만든다.
이럴 수가.
누가 유도로에서 파이프담배를 피우고 있어.
밀항이 아니라고요?
그렇다니까요.
그럼 개의 반응은 뭐죠?
그건 나도 모르죠.
트리그베 시세너와의 첫 만남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의 원시 무기로 장식된 벽
무기라는 것은 늘 원초적이죠. 인간들 처럼요.
이게 뭔지 알아요?
돌 같은데요.
단순한 돌이 아니라 운석이죠. 이 운석은 47억 년 전에 여행을 시작했어요. 지구가 생겨나기도 전이죠. 이 녀석이 여행하는 동안 태양계가 생겨났어요. 지구에 부딪히던 순간에도 자신을 비추던 태양보다 나이가 더 많았죠.
그럼 47억 년의 여행 끝에 당신 집에 도착한 거군요.
사람들은 거기서 오해를 하죠.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 어머니는 스키 점퍼셨어요. 홀멘콜렌에서 점프하고 싶었지만 여자들은 입장 금지였죠.
무슨 놈의 사회가 여자들이 점프도 못하게 했을까요?
스키 점프 해봤어요?
아뇨. 겁이 많았죠. 어머니가 많이 실망하셨을 거예요.
아버지는 점프를 했나요?
그런 셈이죠. 행방불명됐거든요.
친구들은 다 점프했는데 나만 못했죠. 이젠 너무 늦었어요.
모든 것은 너무 늦게 오죠. 그러니까 너무 늦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눈 감고 운전하기 좋은 날이군요.
돛을 팽팽히 당기고
망망대해로 나아가세
우리 영혼이 갈구하는 저 염원을 향해
머지않아 우린 길을 잃겠지
별들이 우리를 안내할 거야
하지만 어느 순간 별들마저 길을 잃겠지
- 스트린베리 '마스터 올로프' -
※ 네이버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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