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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본 칼럼

중세 기사, 칼로 어깨를 두드렸던 이유



유럽 낭만주의 소설(로망스)은 샤를마뉴 대제 시대 즈음, 중세 기사들의 모험담을 다뤘던 것이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세 이전 시대를 다룬 판타지 소설, 전설도 중세 이후에 나왔다. 기사는 평민들이나 복무했던 일반 보병과 구별됐다. 또 ‘miles’('밀리터리'의 어원)'라는 호칭은 말을 타는 신분(향신鄕紳 gentleman)에게만 한정됐다. 기사는 근대 유럽 귀족계급의 주요한 기원 중 하나다. 당시 기사들은 오직 칼 한 자루만으로 ‘신분 상승’을 했던 것이다. 십자군 전쟁의 주요한 동력 중의 하나는 낭인들의 ‘출세’에 대한 의지와 욕망이었다.

중세 시대 기사들은 대부분 글도 몰랐다. 월터 스콧의 유명한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아이반호>(1952, 리차드 소프 감독, 로버트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보면 독일 감옥에 억류되어 있던 리차드 왕을 구하러 간 주인공 아이반호가 왕이 던져준 편지를 읽지 못해 지나가는 사람을 협박해서 글을 읽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사들은 원래 무식한 양아치들에 다름 아니었다.

“무식한 기사는 노동과 평화를 경멸하면서 시민사회의 법과 군사적인 규율을 무시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로마제국쇠망사》 6권 58장에서) 에드워드 기번은 기사를 설명하면서 ‘신과 숙녀의 옹호자로서’라고 쓰면서도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같이 나열하자니 좀 민망스럽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럼 이른바 ‘기사도 정신’의 의의는 무엇일까. 기사가 되지 않았으면 그들은 그냥 야만인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것이 바로 기사도 정신의 의의다. 기사도 정신은 무식하고 폭력적인 양아치 깡패들에게 신앙, 정의, 인간애의 이상과 원칙을 심어줬다. 그리고 인류의 진보에 항상 따라다녔던 ‘신분파괴’의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것도 기사도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다. ‘한탕주의’나 ‘무대뽀 정신’이 결정적으로 진보에 기여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낭만주의 정신의 한 단면이다.

그럼 왕, 공작, 백작, 영주 또는 같은 기사들이 어떤 양아치에게 기사 작위를 줄 때 칼로 뺨이나 어깨를 툭툭 쳤던 의식을 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것은 “그가 참고 견디어도 좋은 모욕으로서는 마지막임을 뜻했다.” (《로마제국쇠망사》 6권 58장에서) 얼마나 낭만적인 이유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