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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사랑에 관한, 그러나 시장에 관한 이야기

   전에 몸담았던 사이트에서 '대가들의 사랑'에 관한 연재글을 구상한 적이 있다. 첫번째, 두번째 이유는 흥행이었고, 세번째는 자료가 방대하고도 그 활용이 단순하다는 것, 나머지는 개인적 관심(사랑에 관한 추상을 구상으로 만들어 볼 때가 되었다는 것)때문이었다. 요즘에는 시각을 약간 비틀어 시장에서 비쥬얼화되는 사랑에 관해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시장지향적인 사랑은 주로 물질주의 비판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비판이라는 단순화된 시각은 소비적 사랑에 대한 손쉬운 태도를 제공한다. 

   시장-가치의 교환이 이뤄지는 장소, 사람, 행위-은 물질주의 비판과 같은 인간적 자율규제를 넉넉히 껴안으면서도 항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그런 데이터를 분류하고 갱신하는 일로 먹고사는 곳이 월 街에서 MBA아카데미, 저널리즘에 이른다. 기본 속성 상 기업 후견부대인 이들의 자료는 다시 생산활동의 방향을 제어한다. 이들이 분류하려는 기초 자료들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상징이다. 이들은 과거 심리학의 열렬한 수호자였던만큼, 현대 뇌과학의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가 되었다.

   인간을 파악하는 데 지겹도록 시시콜콜한 노력을 다하면서도 인간과의 소통에 그토록 풍부한 스태미너를 발휘하는 애인은 없을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 명품에 대한 구매자들의 잘 알려진 태도뿐 아니라 김구라씨가 괴상함과 대중성의 경계에 놓인 독특한 어휘를 던질 때의 반응을 시장, 즉 욕망의 교환이라는 문법 속에서 분석한다.

   사랑에 대해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와 같이 달콤한 추상에 옷을 입힐 재간이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도 이런 주제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범 마케터-위에 말한 뇌과학의 얼리 어댑터들-은 모든 시장을 상대로 하며 논리의 작동 원리를 숨긴다. 자일리톨 검의 대유행에 대해서는 '건강에 대한 관심'을 원인으로 내세우고, 가십 기사의 인기에 대해서는 '관음증'을 이유로 내세우고, 안철수의 부상에 대해서는 '권력에 대한 피해망상'이나 '패션으로서의 정의'같은 타이틀을 붙인대야 그는 아직 수십 개의 분류 체계에 담긴 수백 개의 변수와 수천 개의 워딩을 끌어댈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반적 독자들은 그의 귀납적인 시장분석 원리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울 것이고, 그는 아직 뭔가를 지껄여 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 한정할 때, 성욕이나 소유욕이나 소통욕 이외에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답안지가 빈곤한 만큼, 우선 현상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 최초의 동기야말로 이것이어야 한다. 가칭 러브 인더스트리(love industry)는 소비로서의 사랑에 대한 보고서 형태를 띨 것이다. 인더스트리라는 단어가 업계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긴 하는데, 욕망의 대리물로서 상품을 생산, 유통, 소비하는 주체들의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는 조작적 정의를 부여해 두겠다. 사랑 산업의 주요 현상을 흥미롭게 요약할 수 있길 바란다. 이상적으로는 '욕망'에 대해서도 적절히 건드릴 수 있길 바란다. 방법론 상으로는 소비자행동 분야의 체계-문화, 심리, 경영, 기타 데이터가 될만한 짬뽕-를 빌어다 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