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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밀라노 여행

프라하를 여행했던 때가 2010년 이었으니까 3년만이다. 다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

프라하는 내가 다녀온 여행지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곳으로 손꼽는 곳이지만 여행 당시 나의 상황이 몹시 불안했던 탓에 도시의 아름다움과 나의 기억사이에는 메꿔지지 않는 괴리가 있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다시는 혼자하는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될 것같다고 지인에게 털어 놓기도 했었는데, 내겐 프라하 여행이 그 만큼 ‘외롭고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프라하에서 내가 묵었던 곳은 중심부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강변을 끼고 세워진 오래된 호텔이 었는데 제일 꼭대기 층에 있던 내 방엔 지붕으로 난 창이 있어서 멀리 도시 중심부가 보였던 기억이 난다. 평소 같았으면 좋아라 했을 분위기였지만 그 때의 나는 카프카의 '변신'에서나 날올 법한 방이라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그리고 이 후 3년은 나라는 사람에게 ‘혼자'라는 것이 두려움이 아닌 설레임이었더라는 기억이 아주 천천히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기억은 리셋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혼자 여행을 떠나게된 건 아주 즉흥적이고 우연한 일이었다. 어쩌면 혼자 여행을 하게 된 건, 즉흥성의 결과일 뿐 계획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뉴욕-밀라노 직항, 640달러”, 피크시즌의 반 값도 안되는 초 절정 디스카운트 티켓만 아니었어도 한 해에 두 번 대서양을 건널 체력따위는 솟아나지 않았을 거다. 그 정도 가격이면 대서양아니라 인도양까지 건너야 한대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더우기 계절이 ‘가을’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감성을 주체할 수 없는 즉흥성으로 메꾸고 말았다.   

역사, 문화, 사회 등등의 모든 측면을 고려해 보아도 밀라노가 북부 이탈리아의 명소임에는 분명할테지만 개인적으로 이 도시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었다. 좋은 시간을 만들어 주었던 밀라노 민박집 친구들에겐 좀 미안스럽지만, 그 유명하다는 ‘패션’이나 ‘스칼라 극장’,  ‘두오모 성당’ 같은 알려진 명소들이 내겐 그닥 감흥을 부르지 못하는 이름들이었던 탓이다.

우연히 발견한 싸구려 티켓이 밀라노가 아니었다면 굳이 밀라노를 여행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일사천리로 비행기표를 사고, 묵을 곳을 예약해 놓고 나서야 '가서 뭐 하지?'라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혼자 여행하는 설레임’이 있었기때문이다. 낯선 길을 마구 걸어 다녀야지, 커피시켜 놓고 멍 때려야지, 기차를 타야지, 아무데나 들어가서 밥먹어야지,...별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할 일들이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른다. 영어는 곧잘 하지만 여행중엔 일부러라도 아주 기본적인 영어밖에는 쓰지않는다. 영어가 많은 부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영어권이 아닌 나라를 여행할 때 나만 유창한 영어를 쓰는 건 어쩐지 웃기게 느껴진달까? 아무튼 상대방이 떠듬거리면 나도 떠듬거리며 얘길 해야 마음이 편하다.  

밀라노에서 이틀쯤 지난뒤 겨우 한, 두마디를 익히게 됐는데 처음 길에서 써먹을 수 있었을 땐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 처음 배운 말은 '스쿠쟈', excuse me 혹은 sorry 라는 의미고 두번째는 '도베', 바로 where is~? 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Scuza, Dove Pinacoteca di Brera (브레라 미술관)?" (이 말은 실제로 내가 제대로 문장으로 만들어 쓴 최초의 대화시도이기도 하다)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친절하게 어디어디로 가라로 답을 해준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나는 친절한 행인들의 지시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쩌면 좀 별난 취향인지도 모르겠는데 여행중에 특별히 좋아라하는 일중의 하나는 로컬버스를 타고 승객들의 이야기소릴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고 있다면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의미가 없이 소리로만 접하는 대화소리는 음악을 듣는 것과 꽤나 비슷하다. 아마도 말 속에 녹아있는 운율과 박자 때문일거다. 랩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음악 쟝르도 있지 않은가.   

운좋게 버스 한켠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스쳐가는 창밖풍경에 무심한 시선을 던져놓고 뒷자리 승객들이나 옆에 서서 가는 사람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음악삼아 듣고 있노라면 얕은 잠이 들었을 때처럼 시간도, 공간도, 그리고 나와 함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가볍고도 몽롱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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