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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평양의 봄은 핸드폰을 타고 온다?

2010~11년 거세게 불었던 '아랍의 봄'이 이른바 소셜 미디어라고 불리는 개인 통신의 거대 집합체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기처럼, 바람처럼 이렇다할 정체성도 없는, 이 특이하고 무시무시한 '언론'이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가는데에는 수십년 독재정권도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이집트나 시리아 상황을 지켜 보면 그 때, 그 봄날의 희열은 무엇이었나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의 한미연구소 (US-Korea Institute)에서 발간한 최근 보고서에는 아랍에 불었던 봄바람의 기운이 평양에도 불어 올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보고서는 최근 5년간 폭발적 성장세를 보인 북한의 무선통신 가입자 수와 북한 주민들의 달라진 태도, 또 향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유일한 무선통신 사업자인 고려링크, 이 회사는 이집트 통신회사인 오라스콤 (Orascom) 과 북한의 고려 우편 전신 회사가 설립한 조인트 벤쳐회사인데 투자사인 오라스콤과 북한의 고려 우편 전신 회사가 각각 75%와 2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오라스콤의 회계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전체 무선통신 가입자는 2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숫자는 지상회선을 이용한 전화 가입자가 백만명 안팎이라는 북한의 상황에 비쳐볼때 놀랄만한 가입률이 아닐 수 없다. 2012년 1분기에서 2013년 1분기 사이에는 가입자가 무려100% 증가(1백만명에서 2백만명으로)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한에 무선통신이 소개된것은 2002년이지만 지금같은 폭발적 성장세가 시작된 것은 2008년 고려링크가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때부터 북한의 무선통신은 '일부층'의 정보와 보안의 독점물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가입자들을 공략하게 된다. 물론 북한이라는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오라스콤의 보고서를 곧이 곧대로 믿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때, 적어도 평양등의 주요도시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집중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수가 적지않다는 것은 오라스콤의 보고서가 어느정도 근거있는 자료임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핸드폰 단말기의 가격이 워낙 비싼데다 (우리가 2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북한에서의 가격은 6~70만원대), 전체적인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핸드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인구는 극히 적은 수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법. 핸드폰이 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 되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핸드폰'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능력을 재는 척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2012년 청진에서 탈북한 한 남자는 핸드폰없으면 애인만들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핸드폰의 인기는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에 폭발적인데, 이들의 하소와 압력에 못이기는 부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핸드폰 가입자의 수는 당분간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광풍과 같은 무선통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보의 막힘없는 흐름을 북한에서 찾을 수는 없다. 일단 북한의 무선통신은 국내 전화와 문자로 제한되어 있어서 자료를 주고 받는다거나, 비디오를 본 다거나. 혹은 외국으로 멘션을 날리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며 그마나 모든 통화가 감청되고 있으리란 믿음이 사용자들 사이에 굳건하기에 문제가 될 만한 도구로 사용되는 일은 제한적이다. 어쩌면 (보고서의 결론처럼), 아랍의 봄을 북한에서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섣부른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주 미미할지라도 이러한 흐름이 철통같았던 봉인의 해제처럼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기대를 갖게 한다. 보고서에 소개된 일례로 축구를 좋아하던 김책공업대학의 한 학생이 문자를 주고 받는 것만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축구동호회를 결성할 수 있었는데 이 작은 사건이 상징하는 큰 의미는 관련 정부기관을 기함시켰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향후 북한의 무선통신 성장이 어떻게 유지될 것이며, 이에 따르는 그 어떤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오게 될지는 현재의 경제적 역학관계에 달려있다. 북한의 무선통신 개방 (개방이라하기엔는 아직 부족하지만)은 그 이례성만으로도 숨은 의도을 가늠케 했는데, 가장 설득력있는 가정은 '외화벌이'의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링크의 등장이전 핸드폰 단말기는 모두 중국과의 밀거래에 의한 것이었고 심각한 외화유출의 통로이기도 했다. 또 열풍은 정부의 짭짤한 수입원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한 분석에 의하면 북한 당국의 무선통신 사업으로 거둔 수익이 미화로 4~6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도 한다. 투자사인 오라스콤의 선택도 주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라스콤은 알제리, 파키스탄등 위험국가에 투자하는 수익모델을 지향하는데, 투자국중 가장 높은 수익률 (80%)이 북한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했다. 

 

이해관계에 있는 두 당사자 모두 이 사업을 거두거나 포기할 적극적인 동기는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관계의 주요 변수는 온전히 북한의 정치적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는냐에 달려있기도 하다.


* 이 기사는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 대학원 한미연구소을 통해 발표된 미국의 소리 김연호 기자의 2014년 논문 CELL PHONES IN NORTH KOREA 를 참고한 것입니다.